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hai park Mar 30. 2020

나의 미스터 트롯은

가히 트로트 광풍이다. 지난해 방영되었던 <미스 트롯>은 송가인이라는 국민 가수를 탄생시켰으며, 후속 편이라 할 수 있는 <미스터 트롯>까지 초대박을 터뜨리며, 현재 대한민국 방송계는 트로트가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 <트로트 신이 떴다> 등 트로트 열풍에 편승한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제작되었고, 국민 MC 유재석도 이 열풍에 바람을 불어 널었다. 지난 1~2년간 트로트는 명실상부한 방송국의 효자였다. 젊은 세대가 TV가 아닌 다른 콘텐츠로 눈을 돌리는 사이, 트로트는 중장년층을 다시 TV 앞으로 모이게 했다.


<미스 트롯> 우승자인 송가인은 그녀의 이름을 알린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분위기를 이어받아 <미스터 트롯>도 임영웅, 영탁 같은 스타를 탄생시키며 연일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미스터 트롯>을 통해 정말 쟁쟁한 재야의 실력자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제야 빛을 보는 그들의 눈물에는 꾸밈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미스터 트롯>을 즐겨보고 공유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 열풍에서 잠시 비껴 나 홀로 빛나고 있는 또 하나의 트로트 신성(新星) 이 있다. 바로 조명섭이다.


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내 핸드폰에 뜨게 된 그 동영상은 어느 고등학교 축제 때 찍은 영상이었다. 트로트 공연이라고 제목에 쓰여있길래 고등학생이 무슨 노래를 부를까 궁금함에 클릭을 했다. 고등학생의 트로트라.. 박현빈이나 박상철의 노래를 부르며 코믹한 율동을 할 거라 으레 짐작했었다. 멀리 가도 나훈아나 남진의 노래를 부를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예상은 한참을 벗어났다.


고등학생의 입에서 나온 노래는 현인의 '꿈속의 사랑'이었다.(원곡은 중국곡. 현인이 번안하여 불렀다.) 듣는 순간 귀가 확 트였다. 처음 봤을 때 넋 놓고 유튜브 화면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난 검색을 통해 그가 부른 노래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몇 날 며칠을 계속 보고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그는 과연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였다.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한국 대중가요 초기의 명곡들을 원곡 그대로 재현하였다.


단순히 따라 부르기의 수준이 아니다. 그는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였다. 깨끗한 발성과 매력적인 중저음을 통해 명곡들이 재탄생되었다. 무대에서 연신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듣는 나도 덩달아 기분 좋게 만든다. 더욱이 놀라운 건 그가 이제 20대 초반의 어린 청년이라는 점이다. 물론 어려서부터 트로트를 하는 사람들은 있다. <미스터 트롯>에서도 그런 어린 출연자들이 나와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바이브와 조명섭의 바이브는 확연히 다르다. 1999년생이 1950년 전후로 나온 곡들을 그만의 것으로 체득해 부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웬만해선 그런 노래가 있는지 알기도 어렵다.


조명섭은 '전통가요 지킴이'로 방송에서 여러 번 소개되기도 했다. 어떤 노래의 전주를 들으면 그 노래의 가수와 발표된 연도까지 척척 맞히는 모습이 방송에 나온 적도 있다. 이렇듯 특정시기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오늘날의 트로트 신성을 만든 것이다. 그가 또래의 친구들처럼 아이돌 음악에 열중했었다면, 우리는 이 귀한 목소리를 이번 세기 안에 못 들었을지도 모른다. 만약은 없다지만 말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전통가요와 트로트는 동의어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음악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여 편의상 두 음악을 한데 묶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나도 이 글에서는 이런 시각을 빌리고 있다.) 트로트는 하나의 장르이지 한국 가요의 전통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음악적 양식도 많이 다르다. 전통가요라 불리는 음악들은 얼핏 들어봐도 흔히 '뽕짝'이라고 얘기하는 현대 트로트 음악하고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트로트 가수들도 이 시기의 전통가요들을 구태여 소환하지는 않는다. 가요무대 같은 특집 무대를 통해 간간이 부를 뿐이다.


하지만 조명섭이 서 있는 자리는 정확히 전통가요의 무대이다. 조명섭이 그것을 하는 중이다. 그는 전통가요 지킴이가 되겠다는 그의 바람을 뛰어난 재능으로 실천하는 중이다. 조명섭의 존재 자체가 한국 가요 역사에 있어 참으로 귀하다. 나이에 맞지 않는 올드함이 때로는 예능프로그램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길을 가는 중이다. 항상 미소로 일관하는 그의 표정은 도리어 굳은 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목소리는 참 신기하다. 들을 때마다 자꾸 어딘가로 날 데리고 간다. 시간을 거슬러 오래된 축음기 옆에 날 데려다 놓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배송을 반대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