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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Mar 19. 2020

새벽 배송을 반대한다

쿠팡 맨의 죽음

우려했던 현실이 벌어졌다. 나는 며칠 전 한 택배기사의 죽음을 기사로 접했다. 40대의 택배기사가 새벽에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는 입사 1개월 만에 차가운 새벽 공기에 싸늘히 식어갔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새벽 배송"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문 앞까지 배송이 되는 이 획기적인 시스템. 이러한 새벽 배송 시스템은 배달의 민족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해도 대단히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외국인들도 놀라는 우리나라의 배달문화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한 정도다. 전국 어디든 배달이 안 되는 지역이 없고, 택배는 주문 후 웬만하면 2~3 일안에 내 손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새벽 배송이라니. 배송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이 시스템은 업계에 일대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소비자들은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물건을 받아보니 좋았고,  실제 소비자들의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런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새벽 배송 시장은 점차 커졌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합의로 폭발된 시장은 폭발로 인한 희생은 보지 못했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쟁이 전쟁이 되는 순간 가장 먼저 희생되는 건 최전선에서 뛰는 병사(노동자) 들이다.




맨 처음 새벽 배송이란 게 나왔을 때 주위 사람들과 이 시스템에 대해서 나눴던 얘기들이 생각난다. 다들 칭찬 일색이었다. 빠르다, 편하다, 정말 좋다, 효율적이다 등등.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냐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 섞인 토로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좀 다른 생각을 얘기했었다.

결국 누군가는 그 시간 안에 잠도 못 자고 일을 한다는 건데
그게 과연 좋다고만 할 수 있을까


나의 의견은 지지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은 이랬다.

어차피 밤에 일하면 야간수당도 받고 돈 많이 벌잖아.
어차피 그 사람들도 좋은 거 아닌가


나는 그들의 반응에 조금은 슬펐다. 살짝 소름이 돋기도 했다. 돈 많이 버는 것.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결국 죽었다. 이런 상황에도 돈 많이 받으니까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때로는 택배기사들이 반강제적으로 야간근무를 했던 일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도 '돈 많이 벌면 장땡'이라고 아직도 생각한다면 스스로 돈의 노예라고 선언하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논리는 참으로 무섭고도 슬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논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세상이 다 돈으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돈보다 더 위대한 것이 사람이다. 우리는 지난 몇십 년간의 경제발전과 그 뒤에 수많은 희생들을 기억한다. 이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더 이상은 없어야겠다. 하지만 아직도 수요와 공급의 양대산맥 그 가파른 협곡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내몰리고 있다. 그들의 손에는 생계와 가정이라는 무기가 들려있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전쟁이라면 그들의 생존을 위한 방패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비단 쿠팡 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현재 대형 유통업체를 비롯 수많은 업체들이 새벽 배송에 참전을 한 상태다. 전쟁은 시작됐다. 피 냄새나는 레드오션을 우리는 이미 마주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참 슬프게도 말이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평범한 소시민의 내가 막을 수는 없다. 새벽 배송을 적극 이용하는 사람들을 뭐라 할 수 도 없다. 현대사회에서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삶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지극이 당연한 일이기에.


하지만 그래도 나는 반대한다. '새벽 배송' 지금까지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지만, 앞으로는 더욱 격렬하게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밤을 주고 싶을 뿐이다. 나는 그들이 밤이 주는 재생과 휴식의 에너지를 느끼길 바랄 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당 누려야 하는 그런 기본적인 것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반대하는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글쎄, 내가 너무 낭만적인 얘기만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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