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site"
제인 폰다의 한마디. 그 짧은 순간은 한국 영화사에, 미국 영화사에, 세계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순간이었다. 한국 영화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 4개 부문 수상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해 5월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더니, 급기야 미국인들만의 잔치라고 불렸던 아카데미에서조차 최고상인 작품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기생충> 이 처음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역사를 새로 쓴 것이나 다름없다.
칸부터 시작해 오스카에 이르기까지 <기생충> 이 걸어온 꽃길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투머치 토커 박찬호도 상대가 안될 정도다. 굵직하게는 칸과 골든글로브 오스카 수상이 있겠지만 크고 작은 영화제까지 포함하면 <기생충>의 트로피 수집은 가히 콜렉터 수준이다. 한마디로 2019년에 나온 전 세계 영화 중 최고라고 인정받은 셈이다.
수상 소식으로부터 4일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탈 때도 물론 기쁘고 흥분됐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탈만한 사람이 드디어 타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영화를 본 후 황금종려상 수상이 아주 타당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지만,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니.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아마 전 세계 모든 영화인들, 영화팬들, 관객들, 언론인들, 대중문화 관련 업종 종사자들. 그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희망은 할 수 있었겠지만.
알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국제 영화제가 아니다. 영어권 영화들을 대상으로 하는 로컬 영화제다. 그렇다고 비영어권 영화가 수상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언어의 장벽을 넘기란 영원히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작년 아카데미에서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결국 그 장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그 장벽이 무너졌고 그 역사의 주인공이 바로 대한민국의 영화 <기생충>인 것이다. 일부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간 <로마>와 달리, <기생충> 은 순수 한국 자본의 힘으로 만들어진 100% 국산 영화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물론 <로마>도 매우 훌륭한 영화다.) 배우와 제작진 모두 한국인들이다. 지난 며칠간 국뽕의 최대치를 경험한 것 같다. 이제 do you know? 시리즈에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의 이름도 추가해야만 할 것 같다.
때마침 아카데미가 그동안의 보수적인 취향을 버리고 개방적인 스탠스로 변화를 시도한 것도 <기생충>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이 단지 아카데미의 정치적 입장에만 기댄 결과는 아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른 작품과 비교해봐도 작품성 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아카데미가 이제야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더 어울릴 듯싶다.
원래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던 월요일 바로 글을 쓸려고 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브런치에 일주일 만에 접속했는데, 이미 <기생충>에 대한 글이 차고 넘쳐났다. 유튜브에서도 기생충 관련 영상물들이 계속 업로드되고 있다. 남들 다하는 것은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기생충>에 대한 나의 생각, 이 엄청난 역사에 대한 소회는 그냥 접어두려 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가장 개인적인 것으로 한국영화의 역사를 기억하고 싶었다. 가장 창의적이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순간을 남겨두고 싶었다. 조금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렇게라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다. 2020년 2월 10일의 그 순간을. and the oscar goes to...
요 며칠간 제인 폰다가 작품상을 호명하는 그 순간을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다. 보면서도 계속 믿기지가 않는다. 매년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관심 있게 보고 있지만 한국 영화의 작품상 수상은 볼 일이 전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국제영화상(전 외국어영화상) 수상 정도 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생충> 은 그 어려운 걸 해내고야 말았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계급투쟁 그 씁쓸한 이야기는 유머와 통찰을 안고 전 세계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다. 한국에만 있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것을 영화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이 멋지게 증명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