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매년 4월 15일을 기념하고 있다. '재키 로빈슨 데이'로 불리는 이 날은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이 날에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모든 선수들은 자신의 등번호가 아닌 '42' 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 바로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다. 42번은 메이저리그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번호다. 아무도 가질 수 없는 번호인 42번 숫자가 1년에 딱 한번 모든 선수들의 가슴에 달린다.
재키 로빈슨 이전까지만 해도 흑인이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뛰어난 흑인 야구 선수들이 '니그로 리그'라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1947년 재키 로빈슨이 브루클린 다저스 (LA 다저스의 전신)에 데뷔를 하면서 철옹성 같은 인종의 벽이 허물어졌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인종차별을 극복한 기념비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재키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미국 야구 역사상,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재키 로빈슨의 일화는 2013년에 <42>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메이저리그 개막이 연기된 올해, 재키 로빈슨 데이는 4월 15일에서 8월 29일로 연기되었다. 8월 29일에 모든 선수들은 42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다. 이날 선발투수였던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홈경기에서 42번을 달고 나왔다. 류현진 선수의 호투가 있은지 몇 시간 뒤 귀와 눈을 의심케 하는 뉴스가 들려왔다.
채드윅 보스만은 우리에게 블랙 팬서로 유명한 배우다. 전 세계적인 흥행을 한 블럭버스터의 주인공이고, 많은 팬덤을 보유한 MCU의 주축 멤버이기도 하다. 유명하고 유망한 한 배우의 죽음에 전 세계 영화팬들이 슬퍼하고 애도를 표했다. 추도의 물결은 영화계뿐만이 아니었다. 스포츠 스타와 정치인, 음악인, 그 외 우리가 알만한 유명인사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부터 이제 갓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루키 선수까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했다. 재키 로빈슨 데이에 영화 <42>에서 재키 로빈슨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죽음을 맞이하다니 이 어찌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슬픔과 안타까움이 몇 배 더 크게 느껴졌다.
그를 스타덤으로 만들어준 <블랙 팬서>는 흑인 최초의 코믹스 히어로다. <42>에서 흑인 최초 메이저리그 역을 맡았던 그가 다시 흑인 최초 캐릭터를 맡게 된 것이다. 히지만 이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꾸준히 이런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었다. 그가 맡았던 배역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 '서드 굿 마셜' (마셜). 소울, R&B 등 흑인 음악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 (겟 온 업). 그리고 <42>와 <블랙 팬서> 등 유색인종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배역들을 맡았다. 하나같이 다 역사적인 인물이며 캐릭터였다.
상징적인 흑인 캐릭터를 연달아 맡으면서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형제' 들도 늘어났다. 그는 부담스러워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배우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며 그의 직업을 통해, 그의 연기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표현했다. 결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으며, 아주 대중적인 방식으로 흑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본인의 위치를 인식한 탓인지 수년간의 투병생활도 죽는 날까지 숨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슬퍼하고,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다. 그는 배우로서, 흑인으로서의 사명과 정체성을 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삶의 목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자신의 달란트로 미국 사회의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재능 있는 배우였다. 배우로서 그의 커리어는 짧은 줄로도 설명 가능하다. 그가 주연한 작품은 10편이 조금 넘을 뿐이며, 흥행작 이라고는 <블랙 팬서> 뿐이다. 하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 면면을 살펴보면 긴 줄로 표현해야 마땅할 것 같다.
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 중 가장 큰 별은 아니었지만, 그가 진 자리가 여간 크게 느껴지는 게 아니다.
PS: '흑인' 이란 표현이 논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로 마땅히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를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