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좀 물린다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 몇 년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시대는 감성에 죽고 감성에 사는 삶을 살고 있다. '갬성'이라고 장난스럽게 표현되기도 하는 이 정체불명의 정체는 이젠 기호품을 넘어 필수품이 돼버렸다. 그런데 이놈이 너무 많다. 많다 못해 흘러넘치다 보니 심신이 피곤할 지경이다. 나는 슬슬, 아니 완전히 이런 것들이 물리기 시작했다.
감성이라.. 물론 좋다. 어떻게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 있겠나. 우리는 때때로 영혼과 마음의 재충전이 필요하다. 차 한잔의 여유, 맛있는 음식, 좋은 사람과의 만남. 이러한 것들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건 일련의 어떤 '분위기' 다. 그런 분위기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까지 응당 필요한 행위들이다. 나 역시도 이러한 행위들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너무 넘치니까 하는 말이다. 가뭄만큼이나 홍수도 심각한 자연재해다.
가는 곳곳마다 진열되어 있는 감성들은 때때로 무섭다. 마치 주입식 교육 같다. 어떤 물리적인 법칙처럼 이 감성에도 일정한 형태와 패턴이 있다. 식견이 짧아 수학공식처럼 펼쳐 보이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정형화된 어떤 '느낌' 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고 공유하는 지점엔 분명 그런 것들이 있다. 감성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일 텐데 볼 때마다 공산품 같이 느껴지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누군가 혹은 어디선가 만들어 놓은 감성에 시종일관 끌려다니는 모습이다. 전국에서 나 혼자만 이렇게 느껴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난 정말로 이런 것들이 이젠 좀 지겹다.
감성이 지겹다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생각은 없다. 객관적으로 증명하라고 해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래도 감성의 홍수로 인해 내 미간이 일그러졌던 몇 가지 사례를 꼽아보자면 이렇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흔히 핫플레이스라고 하는 카페나 음식점을 종종 간다. 이런 곳들은 SNS를 통해서 홍보도 열심히 한다. 아마 음식점보다는 카페가 그런 비율이 더 많을 것이다. 어떤 곳은 짧게는 몇십 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게 입장하고 맛본 음식이 실망을 주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심심치 않게 있다. 적은 양과 그것보다 적은 맛으로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그저 인스타그램용일 뿐 인 그런 가게들. 분명 인테리어에는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공식화된 감성을 여기저기 심지어 화장실에도 심어놓은 그 노력은 칭찬을 해주고 싶다. 하지만 기본적인 맛이 보장되지 않고, 심지어 양도 적은 음식들을 몇십 분씩 기다려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것. 다시 생각해봐도 시간 낭비, 돈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는 감성을 소비해야만 하는 걸까. 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해서?
여기에는 몇 가지의 경우가 있다.
종종 여럿이서 밥을 먹고 분위가 좋은 카페로 차를 마시러 가는 경우가 있다. 멤버 중 몇 명이 검색해서 찾아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 만큼 감성 넘치는 인테리어가 가득했다. 하지만 멤버 전부가 동일한 느낌을 가지는 건 아니다. 카페에 들어선 순간부터 눈이 동그래지고 기분이 UP 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냥 시큰둥하고 멀뚱멀뚱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시큰둥한 멤버에게 잔소리 같은 핀잔이 꽂힌다. '감성이 부족하다느니' '센스가 없다느니' '그래서 네가 아직도 솔로라느니' 언제부터 우리는 개인의 감성을 강요하고 또 강요당한 것인가. 감성의 공식이 이런 권리를 부여한 것인가.
음식이 나오고 사진을 찍기 전 수저를 먼저 갖다 댄 사람들은 여지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몇몇의 감성을 위해 멤버 전체가 잠시 기다리는 것은 이제 '국룰' 이 되었다. 100% 이해되지 않지만 나도 이제는 사진 찍는 시간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밥 먹기 전 괜한 잔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아서다.
반려동물도 요즘 감성의 필수요소 중 하나라 생각하는데, 난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이 '개'라는 표현 때문에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댕댕이'라고 불러야 된다나 뭐래나. '댕댕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라는 성급한 일반화로 날 예단(豫斷) 하기까지 했다. 당신이 감성이 풍부한 사람인 건 알겠는데 제발 강요는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 글을 쓰는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것이 취미이든 직업이든 말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는 짧은 토막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감성글'이라는 간판을 달고 올라오는 글들은 하나같이 다 비슷하다. 뭐 어쨌든 공감하고 위로받는 사람이 있으면 된 거지, 그만하면 짧은 글로써 충분히 제 역할은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게시물들을 쭉 훑어보는데, 이게 결국 책 광고였던 것이다. 난 조금 갸우뚱하다. SNS 게시물로서는 매력적이겠지만, 이런 글들이 책으로도 나온다고... 글쎄 잘 모르겠다. 출판되는 책의 기준을 높게만 봤던 나로서는 좀 의아스러운 일이다. 그런 책들을 읽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앞으로도 읽어 볼 일은 없겠지만) 함부로 책의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그 책을 통해 위로받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면 된 것 아닐까. 섣불리 작가들의 결과물에 대해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출판물도 요즘 유행하는 감성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은 틀림없다. 그래서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감성적인 글들에 매달리는 것 같다. 나도 예외일 수 없다. 나도 때로는 어떻게든 내 글에 감성을 욱여넣으려 애쓴다. 글을 쓰는 나는 어색해 죽겠는데, 아이러니하게 그런 글들이 조회수가 높다.
감성적인 글을 나열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일종의 허무함. 그리고 이 정도면 나도 가능하겠다 하는 근자감.
감성여행, 감성카페, 감성주점, 감성 술집, 감성 사진, 감성캠핑, 감성 패션, 감성글, 감성 무비, 감성 사운드..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밥을 먹던, 여행을 가던, 책을 보던, 술을 마시든, 영화를 보던, 사람을 만나던, 사진을 찍던.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는 감성을 붙이지 않으면 못 배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광고와 홍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획일화된 감성이 늘어나는 이유다. 광고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부분은 '이걸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닌, 이걸 안사면 안될 것 같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니까. 우리는 어쩌면 감성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감성에 목을 매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해서라도 '인싸'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내가 늙은 건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나도 갬성(그때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만)에 집착하고 매달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감성이 흔해지고 뻔해진 요즘, 나는 이제 이런 것들이 지겹다. 나에게 감성을 모른다고 말하지 마라. 네 맘은 알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