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 내가 야구에 관한 글을 쓰게 될 걸 알았다. 야구 시즌엔 매일 tv를 끼고 사는 야구광인 동시에, 30년 가까이 일편단심으로 한 팀만을 응원해 온 골수팬이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응원하는 팀의 우승 같은 신명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가까운 시일 안에는 없을 것 같다. 대신에 20년간의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스스로 찍은 한 선수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보살팬이라 불리며 조롱과 위안을 동시에 받던 어떤 팀의 팬들은 올 시즌 유독 힘든 시절을 보냈다. 이 팀의 성적이 나빴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더 심했다. 18연패라는 역대급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사상 최초 100패의 위기가 팀을 압박했다. 감독 경질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군과 2군의 라인업이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3명의 용병 중 2명이 중도에 탈락했다. 시즌 후반 고춧가루를 열심히 뿌린 덕에 100패의 위기는 다행히 벗어났지만, 여전히 순위표 맨 밑자리는 독수리의 차지였다.
눈에 보이는 성적만 안 좋았던 건 아니다. 여러모로 부침이 많았던 시즌이었다. 시즌 중반에는 2 군선수의 코로나 확진으로 언론의 뭇매와 마녀사냥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구단의 대표이사가 사의를 표명하고 구단을 떠났다. 지금 구단에는 사장과 감독의 자리가 공석이다.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은 강제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하게 했다. 그 와중에 눈에 띄게 성장한 선수가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다. 몇몇의 희망적인 요소들을 제외하면 2020년은 한화 이글스 구단 역사상 최악의 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이 시국에 이글스 팬들의 가슴을 때리는 또 하나의 Bad News가 날아왔다.
한화 이글스의 4번 타자 김태균. 그는 2001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20년간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대표선수였다. 만년 하위팀의 빈약한 타선을 이끈 외로운 4번 타자였다. 그랬던 그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에 구단과 팬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물론 그가 예전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전성기 시절 느껴지던 타석에서의 위압감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노쇠화가 시작되었고, 에이징 커브라는 악마가 그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2018 시즌 이후로 시작된 기량 하락은 선수 본인에게나 구단에게나 많은 숙제를 안겼다. 2020 시즌 기량의 하락은 결국 절정에 치달아 이제는 팀 승리에 더 이상 플러스가 안되고 마이너스가 되는 단계까지 떨어졌다.(승리 기여도 WAR 수치 기반) 하지만 그래도 이글스 팬들은 김태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래도 김태균이니까' 다시 한번 반등하리라는 기대를 거두지 않았다. 다른 팀 팬들은 몰라도 이글스 팬들은 그랬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한번 더 반등을 노리기보다는 그냥 쿨하게 미련 없이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2020년 8월 15일이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 구단에서는 은퇴경기, 아니면 마지막 한 타석이라도 제안했지만 그는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기 싫다며 극구 사양했다. 박수칠 때 떠나는 일이 맞는 일이겠지만, 박수 칠 준비도 안 되었는데 훌쩍 떠나는 것 같아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다른 팀 팬들은 몰라도 이글스 팬들은 그렇다.
'국민타자' , '조선의 4번 타자' 같은 명예로운 타이틀이 그에게는 없다. 20년 선수생활 동안 야구선수로서 숱한 기록들을 남겼지만 MVP 수상경력도 없다. (NPB 시절을 제외하면) 당연히 우승반지도 없다. 신인상과 골든글러브 4회 수상이 그가 가진 트로피 전부다. 물론 이마저도 대단한 영광이긴 하나, 명성에 비해 수상 실적은 다소 초라하다.
동시대에 활약했던 강타자들이 팀 우승, MVP, 올림픽 금메달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는 도리어 수많은 별명들을 양산하며 야구팬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국야구에 한 획을 그은 기록을 남긴 그지만 커리어 내내 저평가가 이어졌다.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의 차이는 그를 이기적인 선수로 만들었다. 팀 성적의 부진은 오로지 그의 책임이었다. 좋지 않은 인터뷰 스킬과 언론 친화적이지 못한 성격은 이런 비난을 더욱 부추겼다. 그는 4할에 가까운 타율을 올리고, 연속 출루 신기록을 세우는 중에도 팀의 부진과 그로 인한 일부 팬들의 비난에서 한 번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만년 하위권팀의 4번 타자로 그 누구 하나 뒷받침해줄 수 없는 타선을 묵묵히 이끌었다.
그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연신 팬들에게 죄송하다 라는 말을 반복했다. 무엇이 그렇게 죄송할까. 구단이, 팀이 약한 것이 그의 잘못은 아닌데. 오히려 약팀을 꾸준히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은 김태균이라는 리그 최고의 타자가 우리 팀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죄송하다는 그 말에 선수생활 동안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어쩌면 구단의 은퇴경기 제안을 사양한 것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괜한 논란으로 잡음을 일으키고 구단에 누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 충청도에서 나고 자라 어렸을 때부터 이글스 야구를 본 그가 구단에 대한 애정을 충청도식으로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그렇다. 모두가 박수 칠 준비하고 있을 때 "아유 됐슈~뭘 그런 걸 또 혀~" 하며 아무렇지 않게 떠나듯 말이다.
타율 .320 출루율 .421 장타율 .516 그의 통산 기록이다. 한 시즌에도 기록하기 어려운 기록을 통산으로 달성한 것이다. 타율은 역대 3위 (우타자 1위), 출루율은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통산 안타 2209개, 통산 홈런 311개, 통산 타점 1358점. 홈런을 제외한 모든 기록이 한국 프로야구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록이다. 누군가 김태균이 영양가 없다, 팀에 도움이 안 된다 욕을 하더라도 실제 그의 기록은 웬만한 선수가 아니고서는 범접하기 힘든 수준이다. 무엇보다 암담한 팀의 현실을 그 길고 긴 터널을 혈혈단신으로 버티며 올린 성적이다. 다른 팀 팬들은 몰라도 이글스 팬들은 알고 있다. 그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하지만 이제는 후계자를 찾을 때가 왔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니, 어쩌면 좀 더 미리 그의 후계자를 찾지 못한 것이 그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 포스트 김태균으로 생각하는 후배 선수가 있습니까?"
" 한화 이글스 선수들이 모두 포스트 김태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한화 이글스는 꼴찌를 했다. 이젠 슬플 정도로 익숙한 광경이다. 하지만 경기는 계속될 것이고, 우린 언젠가 또 다른 스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선수들이 떠오르고 지듯이, 스포츠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영원한 것도 없다.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언젠가는... 올 가을에도 낙천적인 보살팬들은 그렇게 희망을 그리는 중이다. 포스트 김태균, 포스트 류현진의 등장을 꿈꾸며 내일을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