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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권리는 어디서 오는가

by 박상환

최근 연예계에 가장 큰 이슈는 아무래도 가수 아이린의 갑질 논란일 것이다. 한 스타일리스트의 폭로가 발단이 된 그녀의 인성 논란은 SNS 세계와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다. 한 개인의 작심 발언을 시작으로 맞장구를 치는 폭로와 발언들이 뒤따랐다. 아이린의 과거 사진과 영상들도 SNS에 계속 노출되고 업로드되면서 이 논란에 더욱 바람을 지피고 있다. 한때 여신으로 추앙받던 그녀는 단 며칠 만에 이미지가 추락되었고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그녀의 과거 사진과 영상에는 온갖 악성 댓글이 가득하다. 반대편에 있는 의견은 눈 씻고 봐도 찾기가 힘들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욕먹을 짓을 했기 때문에 이건 악플이 아니라고. 정당한 비판이라고. 그렇다면 그 비판의 권리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누군가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특권은 무엇으로부터 부여되는 것인가.


우리가 아이린의 인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근거는 그저 한 개인의 생각, SNS에 올라온 게시물이 전부다. 추가적인 폭로가 이어졌다고 한들 그런 제보들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제보들은 마치 대단한 진실처럼 여겨지곤 한다. 우리가 마음껏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는 권리가 그런 개인적인 폭로에서 오는 것인가. 그런 권리로 나만 욕하는 것이 아니니까 괜찮다며 스스로를 정당화할 것인가.


이번일 뿐만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이러한 폭로들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SNS에 올라온 글들이 마치 정의로운 진실처럼 포장되었다. 이는 곧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비판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비난의 행렬에 동참했다. 사건의 진위 여부와는 상관이 없었다. 논란은 항상 뜨겁게 시작되었지만 결말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이린의 언행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실제로 그녀가 인성이 안 좋고 예의도 없고 주위 사람들을 막 대하는 아주 나쁜 사람일 수 있다.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지금 그녀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성격은 그렇지 않은데, 유독 몇몇 사람에게는 차갑게 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쪽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상 이미 악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난의 권리를 얻은 사람들의 무서운 힘이다.


돌아보니 언제나 그랬다. 연예게에 있었던 수많은 논란은 불이 채 타오르기도 전에 결말이 나버렸다. 해당 사건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범인과 피해자가 결정이 났다. 연예계의 논란은 항상 소수의 변호인에게는 인색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시작만 뜨거웠던 논란 때문에 연예인 생활의 끝을 맞이해야 했다. 과연 그들 중에 몇 명이나 진짜 나쁜 사람이었을까.



아이린은 본인의 SNS에 사과문을 올리고, 당사자에게도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당사자가 사과를 받아들임으로써 적어도 둘 사이의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서슬 퍼렇다. 악플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 기세가 쉬이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 같다. 사과문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제삼자가 판단하기엔 너무나 개인적인 영역이다. 글쎄, 사람들이 전부 관심법이라도 쓰는 것일까.


연예인은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직업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그릇된 모습을 보이면 대중들은 가혹한 심판을 내린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이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대중들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연예인에 대한 비판이 따끔한 채찍질을 넘어 날카로운 칼날이 되면 곤란하다. 설령 그들이 안 좋은 모습을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 목에 칼을 들이대도 괜찮을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작년에 있었던 일을 잊어선 안된다. 기억하자. 설리와 구하라가 저 하늘의 별이 된 지 이제 겨우 1년 정도 지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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