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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를 위하여

by 박상환

아는 동생 중에 주말마다 사회인 야구를 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원래 학교 다닐 때까지 야구부에 속해서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일반 직장을 다니면서 토요일 하루 정도만 몸을 푸는 정도다. 무슨 사정으로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는지. 그것까지는 모른다. 괜한 실례가 될까 세세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쨌든 야구를 아직도 좋아하고, 가지고 있는 재능을 썩히기에도 아깝다는 생각으로 황금 같은 주말을 소비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야구나 스포츠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음악 (악기나 노래)이나, 그림 그리는 일, 연기, 사진, 바둑, 그 외 여러 가지. 뭐 일일이 열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의 공통점은 전업으로 삼아서 돈을 벌기엔 조금 실력이 모자라나, 어느 정도의 재능은 있으며 또 본인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그렇지만 계속 꿈을 꾸는 일. 이것이 프로가 되지 못한, 또는 되지 않은 아마추어들의 모습이다. 돈을 위한 일은 따로 있고, 꿈을 위한 일도 따로 있다. 우리 주위엔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여기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나와 다른 작가님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아마추어'라는 단어가 왠지 모르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이분법의 세계에서 부족하고 모자란 쪽은 늘 아마추어의 차지였다. 때론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한 단어로도 사용된다. 물론 프로에 비해 실력이 모자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모자라고 부족함의 대명사가 아마추어란 단어라는 것은 전국에 있는 아마추어들에게는 좀 억울한 일이다. 어쨌든 그들도 해당분야에서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일 텐데 말이다. 여차저차 한 사정으로 현재는 방귀를 제대로 뀔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이 아마추어들을 위해서 아마추어를 위한 무대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인 야구처럼 운동이나 스포츠 분야는 그래도 제법 그런 무대가 많이 있다. 그 외 분야들은 재능과 꿈을 펼칠 기회가 흔치 않다. 가끔 열리는 공모전이나 대회들에 참가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여기서 대다수의 아마추어들이 지레 포기해버리고 만다. 헛된 꿈이었노라며 자기 자신을 그냥 생활전선에 눌러 앉힌다. 아마추어를 위한 협회나 단체도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 대부분의 아마추어들이 꿈을 속으로 삼키고, 아까운 달란트를 썩혀버린다.


어쩌다 꿈이라도 꿀라고 하면 '한가한 사람, 속 편한 사람' 취급이나 받기 일쑤다. 그런데 웃긴 건 욕하던 사람들도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 땐 아마추어들의 재능을 찾는다는 것이다. 많은 돈을 쓰지 않아도 그럴듯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은 어디든 불려 다니는 일이 많다. 사내 체육대회에 대표선수로 뛴다거나, 친구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준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 프로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아마추어란 단어가 폄하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아마추어들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낮은 곳에서 유유히 빛나는 능력자들이다.



아마추어들이 꿈을 계속 꾼다는 것. 그것이 꼭 프로에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인 야구를 하는 친구에게 지금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고 프로선수가 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아마추어들이 자신의 그 비범한 재능을 방치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꿈의 성공이 꼭 부와 명예만은 아니기에 본인의 달란트를 통해 인생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 분야에 따라 방법은 다를 것이다. 동호회 활동을 할 수 도 있고, 열심히 습작 활동을 하고 공모전에 참가하고, 오디션을 보고,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취미 생활로만 즐길 수도 있다. 재능을 방치하지 않는 방법의 모양은 달라도 상관없다. 그 재능이 돈이 되진 않아도 누군가에겐 '돈보다 귀한 어떤 순간'을 선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나와 같은 아마추어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몇 명이나 볼 지 모르겠지만, 이 글이 닿는 어느 곳 누군가에게 작은 응원이나마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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