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란 단어는 올해 이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먼 단어처럼 느껴졌다. 재택근무라는 것은 특정 직군의 소수 직장인들에게만 허락된 것인 줄 알았다. 이러한 시국이 되기 전까지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재택근무는 마치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은 환상을 일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특정 직군의 소수 직장인들을 제외한 모두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나도,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 이상으로 높아질 때마다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매일은 아니고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근무를 하니, 1주일에 1~2회 정도로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 회사는 업무의 특성상 말 그대로 '재택에서의 근무'를 하기란 쉽지 않다. 말이 재택근무지 실상 일일 휴가나 다름없다. 물론 9시부터 6시까지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되고, 하루에 3번씩 줌을 통한 화상채팅에 참여해야 한다는 수고로움이 따르기도 한다. 그래도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꽤나 달콤하다. 알람에 맞춰 억지로 일어날 필요도 없고, 씻고 옷을 입고 머리를 손질하는 번거로움이 하루 줄어든다는 것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다.
회사에서는 마냥 놀게만 하기가 뭐했는지 재택근무할 때마다 과제를 내준다. 업무지식에 관한 문제를 내주면서 풀어보라고 하거나, 온라인 동영상을 통해 교육자료를 시청하거나. 뭐 대충 그런 것들을 숙제로 내준다. 어쩔 땐 그 두 가지 모두를 과제로 내는 날도 있다. 문제풀이야 어차피 업무에 필요한 부분이니까 이해가 간다. 문제는 동영상 교육인데 업무와 관련된 동영상을 보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상관없는 동영상을 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유명인의 강의를 보고 느낀 점을 적으라는 경우. 왜 요새 강연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영상 콘텐츠가 굉장히 많지 않은가.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개인 카톡으로 보내준다. 그 영상을 보고 짧게 느낀 점을 적어 제출하는 것이 그날의 과제다. 보면서 쓰면서 생각한다. '재택근무 날에 (업무와 상관없는) 뭘 이런 걸 쓰라고 하나' '나는 왜 이걸 보고, 쓰고 앉아 있어야 하나' 짧은 영상을 보면서 근로자 처우 개선부터 갑질 문화까지 별의별 거창한 단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최근 재택근무 날에 회사에서 보내준 영상은 '세바시'라는 영상 콘텐츠였다. '세상을 바꾸는 15분'의 줄임말인데 연예인이나 사회적으로 인지도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강연을 하는 것이다. 주제는 다양하다. 최근에 본 영상은 코미디언 오나미 씨와 장애인 인식 교육 개선 강사 이진영 씨의 강연이었다. 이왕 과제를 한 김에 개인적인 공간에도 기록을 남기려 한다.
1. 상황을 극복하여 긍정적으로 사는 방법 (나의 장애는 +알파다 -이진영)
- 강연자가 선천적 장애를 극복하고, 많은 핸디캡에도 불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한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준다. 그 자리까지 가기까지는 결국 어머니의 차별 없는 인식에 기인한 양육방식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모든 가족이 그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15분 강연으로 우리는 잠시 색안경을 지울 수 있지만, 다시 장애인에 대한 색안경이 씌워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강연을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감동이 일상에서의 실천으로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강연자처럼, 그녀의 어머니처럼 되기 위해선 결국 강연자의 어머니 같은 사람이 더 많아져야 된다. 차별 없는 시선이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보통의 경우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져야 된다. 강연의 내용은 장애인이라는 소수자의 성공사례를 통해 긍정의 개념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강연자의 사례가 장애인이라서 더 높게 평가되거나 반대로 더 낮게 평가되거나 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의 노력과 성공이 가치가 있듯, 강연자의 성공도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장애인들을 대할 때 ‘장애인이라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같은 수식어를 지우는 일이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아마 장애인 인식개선에 대해 공부하는 이진영 강연자의 생각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수가 다수가 될 때 그래서 더 이상 이런 강연도 필요 없어질 때가 오는 것이 아마 모든 소수자들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2. 자존감을 높이는 법
(마음과 몸의 근육이 필요한 이유 - 오나미)
-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굳이 외모에 관한 이야기로 풀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다. 외모에 대한 개그로 유명한 인기 연예인을 섭외한 부분은 오히려 못생긴 사람은 자존감이 낮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물론 오나미 씨의 강연을 통해 누군가 위로를 받고 마음의 근육이 늘어났다면 정말 잘된 일이다. 강연의 의도가 정확히 실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강연이 도리어 못생긴 외모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확고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외모 때문에 상처도 받고 악플에 시달린 일들은 개인적으로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오나미 씨의 경우는 그 외모 때문에 연예계에서 제법 괜찮은 커리어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본인도 얘기했듯이 외모 때문에 개그콘서트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고 강연에서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오나미가 아닌, 그러니까 개그우먼이나 연예인이 아닌 경우는 어떨까. 자존감을 높이고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 꼭 특정한 보상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일까. 연예인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대다수의 못생긴 사람들은 어떻게 자존감을 높여야 할까. 강연의 의도는 물로 외모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모든 사람을 향한 기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외모에 대한 강연과 강연자를 세우면서 자존감에 대한 오해를 만들고 말았다. 강연자로 나선 오나미 씨도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으로 일관해 어떤 특별한 감흥을 주지는 못한다. 이 강연에서 주목할 부분은 오나미 씨가 본인 스스로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됐다는 바로 그 부분이다. 유명 연예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가족, 친구, 회사 동료, 아니면 본인이 속한 그 어디든 말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웃고 싶어서, 울고 싶어서, 배가 고파서, 얘기하고 싶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모든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다. 기억하자. 우리는 누군가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간략하게 느낀 점을 적으라는 회사의 요구에 괜히 진지충 모드로 임한 것이 아닌가 민망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감성이 메말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이 매우 건조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걸 왜 쓰라고 하나'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하게 된 일이었는데, 내 입장에선 글감이 하나 생긴 셈이다. 회사의 의도는 월급 주는 직원들을 어떻게든 놀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지만, 나는 그 속셈을 역이용했다. 덕분에 나는 글을 쓸 기회를 얻었고, 내 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사막의 오아시스가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