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untitle

내겐 응모하는 자체가 실패

by 박상환

보면 볼수록 브런치팀은 항상 열일 중이다. 이곳에 있는 수천, 수만 명의 작가들에게 '용기와 '동기'를 주기 위해 늘 고민하는 것 같다. 매년 진행하는 '브런치 북' 시상은 물론이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공모전과 활동을 통해 작가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나 역시 얼마 전 <브런치 x 우리가 한식> 공모전에 응모를 했었더랬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모전이 비슷한 시기에 열렸다. 바로 <나도 작가다> 공모전이었다.


1차 공모전의 주제는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였다. 나는 공지를 좀 늦게 보기도 했고, 도무지 좋은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기회를 그냥 흘려보냈었다. 아쉬울 것도 없다. 응모를 했어도 실패했겠거니 하고 넘기면 그만이었다. 자연스레 내년을 기약하려 할 때쯤 2차 공모전 소식이 들렸다. ' 아 이게 1년에 한 번씩 하는 게 아니었구나..'


2차 공모전의 주제는 '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이라고 한다. 실패라... 이 광범위하고도 막연한 주제를 두고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 나는 이번에는 꼭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참여를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잘린 얘기를 해볼까. 아니야 그건 너무 흔한데.."
"여자 친구한테 차였던 경험을 써볼까. 그건 좀 진부한 것 같은데.."
"18연패를 당한 프로야구팀에 대한 글을 쓸까. 아니야 스포츠는 브런치에서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야"


나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글감을 찾아 헤매었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뿐 확실한 느낌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글을 쓰기 위해 뭔가를 억지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좋게 포장해 '창작의 고통' 일 수 있겠지만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 쓴다는 것.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그런 딜레마에 빠지기도 여러 번. 나는 이미 감정의 큰 짐을 씌우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며칠 전부터는 공모전에 응모한 다른 작가님들의 글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응모된 글들을 읽으면서 직감했다. 나는 실패할 거라고. 공모전에 응모해도 안될 거라고. 나는 다른 작가님들처럼 내 경험담을 그렇게까지 장황하고 유려하게 쓸 자신이 없었다. 그 수많은 경험담 속에서 내 경험이 더 특출 나고 애잔하다 라고 할 자신이 없었다.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당선되면 무슨 녹음인지 낭독인지 그런 것도 한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더더욱 실패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그런 글들을 쓸 자신이 도무지 없었다.




내가 이토록 실패에 관한 글을 쓰기 힘들었던 건, 나는 그 모든 일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여러 힘든 일을 겪었지만 나는 그것들이 결코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미 내 맘이 실패가 아니라 하는데 내가 어떻게 실패에 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해서 내 마음에 반하는 글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공모전을 앞두고 나는 묻어두었던 과거 일들을 굳이 꺼내 보았다. 공모전 맞춤용 글을 써보려 그때의 쓰렸던 기억들을 애써 생각해냈다. 마음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과거의 기억들을 꺼내면 감정의 변화가 생겨 기가 막힌 글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는 그냥 과거였다. 이미 마음의 굳은살이 두껍게 층을 이룬 그곳에서 '글맥'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어떤가. 실패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나..




사실 나도 그 모든 것들을 실패로 여겼던 적이 있다. 주말에 잘 쉬고 와서 회사에 출근했는데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던 일. 퇴사 후 안 좋은 일에 휘말려 법원에까지 갔던 일. 여자 친구 부모님에게 무시당했던 일. 그 여자 친구에게 두 번이나 차였던 일.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얘기하자면 2박 3일도 모자를 지경이다. 다만 나는 이런 일들을 다 풀어헤쳐 활자로 옮기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쨌든 모든 일들은 다 지나갔고, 실패니 성공이니 하는 것들은 다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마음의 인이 박인 걸까. 현재의 나는 웬만한 일에는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여전히 인생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고,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두고 실패나 성공 따위를 운운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체 그러한 판단은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내가 계속된 공모전에서 탈락하고, 계획하는 일들이 다 물거품이 된다고 한들 그걸 아무렇지 않게 실패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실패(失敗) : [명사]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실패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로만 따진다면 우리는 모두 실패한 사람이다. 살면서 누구나 뜻한 대로 되지 않는 경험들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주제로 공모전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가장 흔한 주제일 테니까. 물론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지만 인생 전체적으로 봤을 땐 얘기가 좀 다르게 된다.


인생엔 여러 가지의 과정들이 있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난이도는 더 높아진다. 크게는 입시 -> 취업 -> 결혼의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그 안에 무수히 많은 단계와 과정이 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많은 실패들이 있다. 이 과정들이 그저 하나의 단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과정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우리 인생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느 한 단계에서의 실패가 다른 과정에서는 성공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은 매 순간 출발점에 있는 과정의 연속인 것이지, 성공과 실패 같은 결과론적인 얘기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차피 매일 실패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하루에 하나쯤 꼭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니까 말이다.



어떤 일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게 된 나도 실패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이 글쓰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 진행하는 공모전 말고도 몇 차례 다른 곳에 응모를 해봤지만, 아직 한 번도 당선이 된 적이 없다. 나는 그때마다 쓴잔을 삼켰고 부정적인 기운에 빠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패배감이었다.


지금 이 글도 당연히 실패할 것이다. 그 수많은 멋진 경험담 속에서 이런 자조(自嘲)는 묻힐게 뻔하다. 그럼에도 내가 응모를 하는 이유는 브런치가 주는 그 '용기'와 '동기'를 간곡히 원하기 때문이다. 1년 넘게 했던 나의 글쓰기 생활에 작은 보상이나마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당선에 실패할 것이다. 공모전에 잘 보이기 위해 어떤 글을 써야 될까 했던 고민은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다. 그럼 이 글은 실패한 글일까. 성공한 글일까.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매일 출발점에 서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