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 10명의 가치

by 박상환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의 도시였다. 인간의 욕망이 끝에 다 달아 더 이상 정화나 재생을 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 곳에 과연 정의와 도덕은 존재하는 것일까. 하늘을 우러러 매우 부끄러운 일들이 매일 펼쳐지는 곳이 소돔과 고모라였다. 도덕적 퇴폐가 달한 이곳을 하나님은 멸망하겠노라 경고한다. 믿음의 조상이라 일컫는 아브라함은 이때부터 하나님에게 거래 같은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이 소돔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처음은 이랬다. "그곳에 의인 50명이 있어도 멸하시겠나이까, 의인과 악인을 함께 심판하면 부당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곳에서 의인 50명을 찾으면 멸하지 않겠다" 고 화답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없었는지 숫자를 계속 줄인다. 45명, 40명, 30명, 20명. 끝내 아브라함은 10명의 의인을 배수의 진으로 쳤고, 하나님은 "10명의 의인이어도 멸하지 않겠다" 고 했다. 하지만 소돔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결국 불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고, 현재는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 한마디로 나라가 망한 것이다. 현재 소돔과 고모라는 여러 곳에서 죄악의 상징으로 인용되고 비유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어렸을 때 가족들과 뉴스를 보다 보면 어른들은 이런 말을 많이 했다. "말세야 말세". 세상의 종말이라는 말인데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런 말을 했을까. 부모님의 증언으로는 부모님의 부모님도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모님의 부모님의 증언으로는 그 부모님도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의 조상님들도 비슷한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겠다.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악행들이 연일 헤드라인을 때리고 있다. 정말 그런 뉴스만 보면 조만간 이 세상이 망하겠구나 싶다. 게임 GTA의 실사판,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현실화가 머지않은 느낌이다.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어쩜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최대한 덜 마주치는 게 복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삶의 희망은 줄어든다. 나도 한번 나쁘게 살아볼까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악인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




지난주 뉴스는 코로나와 태풍의 차지였다. 코로나로 긴 싸움 중에 있는데, 이 와중에 태풍까지 몰아닥쳤다.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배드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빛 같은 소식이 내 눈에 들어왔다.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본인도 위험한 상황에서 저런 판단력과 행동력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불과 몇 초 후 다리는 무너졌고, 덕분에 차량에 탑승한 사람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차에 타 있던 사람은 분명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한 사람의 목숨만 구한 것이 아니다. 매듭 된 여러 개의 세계를 구한 것이다.


다리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던 저분은 무슨 생각이셨을까. 어떤 생각으로 뛰쳐나가서 손을 흔들었을까. 아니, 오히려 생각을 많이 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고 본인의 위험을 무릅쓰는 어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일 것이다.


생각하건대, 결국 이런 분들이 의인인 것이다.


이러한 얘기가 처음은 아닐 것이다. 교통사고 현장이나 재난, 화재, 범죄 현장 등에서 의로운 일을 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직업의 사명을 다하는 소방공무원 분들이나 경찰공무원분들도 계셨고, 전혀 상관없는 분들이 발 벗고 나서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우리가 악인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지만, 의외로 의인도 못지않게 많이 있었다. 이런 분들의 의로운 행위가 sns와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로 널리 알려진다는 것은 이 시대에 감사할 일이다.


미디어에 노출된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어쩜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요즘 세상에도 저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 굳이 극적인 상황에서 영웅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자리에서 묵묵히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코로나 때문에 몇 달간 격무에 시달리는 분들도 있다. 의사, 간호사분들, 방역하시는 분들, 보건소 직원분들, 그 외 관련 업계 종사자분들. 이런 분들도 이 시대의 의인이라 생각한다.



성경의 이야기를 직접 대입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세상이 망하지 않는 것은 이런 분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인 10명의 존재, 그보다 훨씬 많은 의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없을지라도 당장 세상이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의인의 가치란 이런 것이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의인들을 보면서, 직접 만나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네". 이런 작은 희망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해 준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기 욕심과 욕망만 쫓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그래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 의인과 악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의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악인은 되지 말아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만든다. 또한 의인은 또 다른 의인을 만든다. 의인의 모습을 보고 자란 세대는 자연스레 그 길을 따라간다. 의로움이 세대를 거쳐 전승되면서 이 세상이 계속 살만하게끔 되는 것이다. 의인의 가치란 그런 것이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한 줄기 빛이라도, 10명의 의인이라도 있다면 이 세상은 살아갈 희망이 있다. 종교를 떠나서 몸소 세상의 빛이 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며 나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나는 지금 어느 편에 있는 것인가. 이쪽저쪽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빛이 될 수는 없을까.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에베소서 5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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