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 40

불안이라는 것에 관하여

by 박상환

우연의 일치일까. 필연의 결과일까. 요즘 들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일신상의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이직, 퇴사, 창업, 구직, 알바. 이러한 변화를 이미 겪은 친구들, 그리고 변화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로 나뉜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변화에 직면하게 된 친구들도 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조금 넘어가는 시점에 우리는 또 다른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왜냐고? 불안해서다. 지금의 우리 자리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요즘 시대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 다들 뭔가를 준비하려 했다. 차마 실천하지 못하고 환경이 따라주지 못해도 끊임없이 고민 중이었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불안감은 더욱 뼈저린 현실이 되었다. 예외는 없다. 누가 봐도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저마다 불안을 끌어 안은채 살아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미래와 불안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났다. 적어도 4~5년 정도는 지난 것 같다. 사회의 문을 두드렸던 설렘과 열정의 단물이 빠질 때쯤, 그때부터 대화의 주제는 조금씩 바뀌었다. 새벽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고 입에 침이 튀도록 떠들어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우리는 결국 불안감을 과거의 추억으로 희석시키며 헤어지곤 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우리는 더욱더 열심히 살고 있지만, 여전히 삶은 오리무중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던 불안감도 아직 유효하다. 과거의 추억을 소환해 정신 승리하는 술자리의 끝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사실 그런 추억이 주는, 그것 때문에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꽤 크다. 대화의 꽃이 필 때 우리는 웃고 있지만, 우리의 내막은 그렇지 않다. 가슴에는 불안감을, 머리로는 미래에 대한 설계를 고민하며 치열하게 술잔을 부딪혔다.


그런데, 참 우리는 치러야 할 대소사들도 많다. 결혼식, 장례식, 회식, 그 외 기타 등등의 형식. 가정을 돌보는 일, 자녀를 양육하는 일, 어딘가에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일,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 일주일, 한 달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쌓인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어쩌다 나만의 시간이 생기는 날도 진짜 '휴식' 만을 위해 사용이 된다. '계획'이나 '설계'를 위해 쓰기에는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참 애잔한 우리들이다. 그렇게 휴일을 보내고 나면 불안감이 또다시 찾아와 잠 못 들게 만든다.



그러면 이 불안감을 타개할만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을까. 복권 당첨 같은 인생역전이 있으면 해결될까.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면 불안감이 없어질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욕심에 끝이 생길까.


우리의 인생에 역전이나 부와 명예는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이 찾아온다고 한들 욕심의 종지부가 찍히진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욕심 때문에 불안한 것인가. 그렇다면 욕심 없는 무소유의 삶을 살면 어떨까. 철학적인 얘기를 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삶은 어떤 관념보다는 피부로 느껴지는 차가움이다. 변화에 직면한 친구들에게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불안감은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존재다. 우리는 이 친구에 대해서 몇 년 전부터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더 오래인 것 같기도) 계속 얘기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열심히 살다 보면 없어지겠지. 하지만 없어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분명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무언가를 배우려 시간을 쪼갰다. 회사의 요구에 늦은 밤까지 사무실을 지켜야 했다. 휴일을 반납하고 먼 지방까지 출근하는 일도 있었다. 원치 않는 자리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 불안감과 답답함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우리는 당연히 앞으로 더 열심히 살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감히 예상컨대, 몇 년 후에도 우리는 비슷한 얘기를 할 것이다. 그때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재에 대한 피로를 얘기할 것이며,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대화를 마무리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이 불안감이 결국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아닐까. 우리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그토록 부딪혔던 것은 결국 이 불안이라는 친구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나와 우리의 동기가 된 것은 아닐까. 미래를 불안해한다는 것이 어쩌면 버틸 수 있는 용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몇 년 전부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친구들을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가만히 들어줄 수밖에 별다른 말을 하진 못 했지. '그냥 잘될 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인생 뭐 있냐고' 그 정도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친구들 중에 제일 못 나가는 사람이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그들은 기꺼이 의지했고 나는 그저 귀를 대줄 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나이가 50이 되고, 60이 되어도 불안감은 여전할지 모른다. 그때쯤이면 아예 신체의 일부분처럼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쨌든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감사하기 때문에 고맙기 때문에 나의 두 귀를 기꺼이 그들을 위해 쓰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설계하고 계획하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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