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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Sep 28. 2019

<예스터데이>

영리하고 올바른 명곡 사용 설명서

 우리에게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등의 영화로 유명한 영국의 영화 제작사 '워킹 타이틀'. 워킹 타이틀에서 만든 영화라고 한다면 왠지 떠올려지는 이미지와 느낌들이 있다. 같은 로맨틱 코미디 이면서도 분명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와는 분명 다른 구석이 있다. 게다가 영화의 주제곡이나 배경음악들도 같이 인기를 끌며 워킹 타이틀표 영화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완성시켜 주었다. 그런 워킹 타이틀이 비틀스의 명곡들을 들고 나온다는 게 매우 흥미로웠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감독은 영국을 대표하는 대니 보일이다. 대니 보일과 워킹 타이틀의 조합이라니 꽤나 호기심이 가는 조합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워킹 타이틀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로맨틱한 영화를 원체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노팅힐>이나 <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재밌게 본 로맨틱 영화가 죄다 워킹 타이틀 제작 영화인 거 보니 나도 알게 모르게 워킹 타이틀 파였던 모양이다.


원래 처음부터 보려고 했던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찮게 지인의 권유로 같이 보게 됐고, 기대를 전혀 안 했던 탓인가 의외로 쏠쏠한 재미를 준 영화였다. 이제 보니 나는 그냥 대놓고 워킹 타이틀 파였던 것 같다.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Now it looks as though they're here to stay
Oh, I believe in yesterday


Suddenly, I'm not half the man I used to be
There's a shadow hanging over me
Oh, yesterday came suddenly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she wouldn't say
I said something wrong, now I long for yesterday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Oh, I believe in yesterday


비틀스의 명곡 예스터데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곡이자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다. 비틀스는 몰라도 이 노래의 멜로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지구 상에 없을 듯싶다. 이 노래의 화자는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아쉬움과 후회,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 세계에 있었던 몇 분 동안의 정전으로 사람들은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비틀스, 코카콜라, 해리포터 등등.. 만년 무명가수인 잭은 이 기회를 틈타 비틀스의 명곡들을 자기가 만든 노래로 위장해 전 세계적인 명성을 단숨에 얻게 된다. 현재 가장 잘 나가는 뮤지션인 에드 시런 마저도 자기를 살리에리라고 낮출 정도다. 엄연한 대지구인 사기극이지만, 영화는 잭의 잘잘못을 따지려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도덕과 윤리는 크게 중요한 덕목이 아니다. 워킹 타이틀 영화가 늘 그랬듯 이 영화가 얘기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것도 어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랑 말이다.


<노팅힐>에서는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평범한 자영업자와 사랑을 이루고, <러브 액츄얼리>에서는 영국의 수상이 평범한 여성과 만나게 되는 것이 '사랑은 가까운 곳에 있어요'라는 슬로건 과는 어쩌면 전혀 맞지 않는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팅힐>과 <러브 액츄얼리> 그리고 <예스터데이>의 각본가인 리처드 커티스가 얘기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가까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위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눈 앞에 펼쳐진 부와 명예를 쫓지 않고,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하여 자기 마음의 소리를 따라간다. 참 말도 안 되는 사랑 이야기지만, 이 판타지 적인 러브 스토리가 통하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줄 수 있는 기쁨 중 대리만족이라는 기쁨이 바로 이러한 로맨틱 영화의 미덕이 아닐까.



주인공인 잭이 차츰 유명세를 타는 과정에서 비틀스의 명곡들은 계속 플레이가 된다. 또한 잭이 앨범 작업을 앞두고 스트로베리 필즈 나 엘리너 릭비의 묘지를 찾아가는 등 비틀스의 추억들을 재현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확실히 이 부분은 비틀스에 대해서 더 많이 알수록 영화를 보는 재미와 감흥이 더해질 거라 생각이 든다.


비록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명곡들이 전면에 배치되는 구성이 아니다 보니, 보는 사람에 따라서 성에 안 찰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넓은 스크린과 훌륭한 사운드로 그들의 명곡을 온전히 느끼고자 했던 관객들은 다소 배신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비틀스의 노래들은 중간중간 양념처럼 사용될 뿐 절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 재료로 사용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게 더 좋았다고 본다. 기존의 워킹 타이틀이 잘하는 사랑 이야기에 주옥같은 명곡들을 양념처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아주 괜찮은 음식이 탄생했다. 저작권료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었다. 하지만 관객이 그런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청각적 즐거움은 덜하겠지만, 그렇다고 비틀스의 명곡들이 그렇게까지 의미 없게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예스터데이의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감성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진짜 명곡은 명곡이다.



현대음악사의 전설이 돼버린 비틀스를 추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일 같다. 그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한들 그들의 업적과 명성에는 한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들에 관한 수없이 많은 콘텐츠들이 만들어졌지만 그들이 가진 것을 온전히 재현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2019년에 비틀스의 고향에서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는 다소 색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추억하고 있다. 비록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비틀스를 직접 본 세대보다 그렇지 않은 세대가 더 많아지고 있는 이때에 그들의 명곡을 소개하는 나름 적절하고 영리한 방식이었다.


You think you've lost your love
Well, I saw her yesterday-ay
It's you she's thinking of
And she told me what to say-ay

She says she loves you
And you know that can't be bad
Yes, she loves you
And you know you should be glad


사랑은 가장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이다. 그렇기에 몇천 년 몇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노래하고 시를 쓰고 이제는 영화로까지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비틀스 노래를 들어봤을 것이다. 가장 보편적이고 어쩌면 영원히 기억될 비틀스라는 이름.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이 비틀스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았으면 한다.


ps: 엔딩 크레디트를 보며 헤이 주드를 따라 불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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