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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Oct 06. 2019

<조커>

호아킨 피닉스, 히스 레저를 지우다.

그동안 많은 코믹스 원작의 히어로 무비들이 나왔었다. 수많은 히어로들이 영화계의 스타가 되었고, 때로는 사람들의 우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에 못지않게 히어로들과 대치하는 빌런들도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중 제일은 '조커' 란 캐릭터일 것이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에서 처음으로 스크린 데뷔를 한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를 대표하는 악역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빌런이 되었다. 특별한 슈퍼파워를 자랑하기보다는 고도의 심리전으로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 매력적인 빌런은 당대의 명배우들과 함께하며 히어로 무비의 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조커는 어쩌다가 조커가 되었을까. 그 기원을 이야기하는 <조커>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여러 가지 논란을 양손에 쥐고 우리 앞에 찾아왔다.




조커는 광기의 사이코패스이자 사회질서마저도 전복시킬 수 있는 혼돈 악 그 자체다. 필연적으로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자에게도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조커를 연기했던 배우들은 다음과 같다.

잭 니콜슨 :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회 수상, 남우조연상 1회 수상,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히스 레저 :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

자레드 레토 :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 : 베니스 영화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고인이 된 히스 레저만 조커 역할로 수상을 한 것이고, 나머지 배우들은 이미 다른 영화로 수상경력이 있는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연기자들이 이 조커란 캐릭터를 거쳐갔다. 그중에서도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가 사람들 머릿속에 가장 깊이 박혀있다. <다크 나이트> 개봉 이후 '조커=히스 레저'의 공식이 생겼고, 이 공식은 한동안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못지않은 연기력의 소유자인 호아킨 피닉스. 히스 레저의 친구이기도 한 그가 연기하는 조커란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연기력의 의심은 없었다. 다만 히스 레저가 쌓아놓은 아우라가 워낙에 압도적이어서 <다크 나이트> 이후에 나오는 조커 들은 히스 레저와의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영화 개봉 전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그 부분이었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동안 뛰어난 연기로 영화를 빛나게 해 준 연기자는 많이 봐왔다. 하지만 연기자 한 명이 아예 그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압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영화는 본 적이 없다. 물론 어딘가에 그런 영화가 있었겠지만 최근에 몇 년간 본 영화 중에는 단연코 그런 영화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호아킨의 호아킨을 위한 호아킨에 의한 영화다.




조커가 처음부터 조커는 아니었다. 아서 플렉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코미디언 지망생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자 코미디언이 되고자 했던 아서는 결국엔 웃음이 아닌 공포를 주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늘 소외되고 존재감 없던 그가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은 처음으로 살인을 하면서부터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고담시의 군중들은 기득권을 처벌할 응징자로 이 광대 살인마를 선택하게 된다. 어느새 아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내면의 악이 깨어나게 된다. 인기 TV 쇼에 출연해 '코미디의 왕'을 처단함으로써 영웅에서 우상이 된다.


영화는 소심한 코미디언 지망생이 어떻게 악인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악이 표출되는 과정을 몰입해서 보게 되는 건 전적으로 호아킨 피닉스의 소름 끼치는 연기력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를 연출한 토드 필립스의 연출력도 의외이긴 하다. <행오버> 나 <듀 데이트> 같은 코미디 영화를 연출한 사람이 맞는지 혹시 동명이인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순전히 호아킨 피닉스의 공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는 것. 아마도 이 지점이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부분일 것이다. 어찌 됐든 조커는 분명히 악인이다. 자신이 차별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그러한 폭력이나 살인이 이해가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이해가 된다. 나약하고 힘없는 아서의 심리가 공감이 되고, 그가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죽일 때는 일말의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게 만든다. 이마저도 호아킨 피닉스의 무지막지한 연기력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그동안 줄곧 dc유니버스의 절대선으로 군림했던 웨인 집안도 여기서는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태껏 우리가 봐왔던 코믹스 원작 기반의 영화와는 정 반대편에 있는 아주 도발적인 영화임이 틀림없다.


이 영화가 폭력을 미화한다거나 지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 내적으로 주인공의 폭력과 살인의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여러 논란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마치 전쟁영웅처럼 느껴지는 마지막 장면은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아서 플렉의 개인적 서사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지만 논란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사실 이러한 논란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에서 더욱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다크 나이트> 개봉 당시 실제 극장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에 나오는 고담시의 상황이 현재 미국의 정치판과 유사하다는 말들도 있다. 심지어 미국 평론가들은 "위험한 영화"로 치부하며 이 영화에 대해 아주 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그동안 이보다 더 폭력적인 영화도 많이 있었다. 우려 섞인 말들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영화 자체가 폄하되는 건 곤란하다. 뛰어난 연출과 그보다 더 뛰어난 연기. 토드 필립스와 호아킨 피닉스가 만든 이 악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왜 베니스가 최초로 코믹스 원작 영화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제는 그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조커=히스 레저의 공식을 이제는 버려도 될 것 같다. 이제 앞으로 조커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히스 레저가 아닌 호아킨 피닉스와의 비교를 당하게 될 것이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꼭 봐야 되는 이유는 바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력이다.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으나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커의 폭력과 살인이 불쾌하게 느껴졌다면 이미 그의 연기력에 빠져버렸다는 방증일 것이다.


보라, 그의 연기력에 히스 레저도 박수를 치고 있지 않은가.



ps: 참고할만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 <코미디의 왕>, <모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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