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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Oct 20. 2019

<제미니 맨>

지나친 의미 부여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세계 최고의 킬러이다. 한때는 국가조직에 소속되어 국가의 지시로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인사들을 수없이도 살해했었던 최고의 군인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제는 그 국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한 명의 주인공이 다수의 적 또는 국가나 테러단체를 상대로 싸우는 '맨몸 액션' 영화는 제이슨 본 시리즈부터 시작해 <테이큰>, <존 윅>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참 많이 봐왔던 스타일의 영화다. 이제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이러한 설정에 기존의 시리즈들은 액션의 완성도를 더욱 세밀하게 가공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단물이 다 빠진 이러한 설정에 막차를 타고자 하는 영화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번에 개봉한 <제미니 맨>이다. 막차에 손님몰이를 하기 위한 티켓 팔이 동력원으로 윌 스미스가 선택되었는데 이건 정말 잘한 선택이다. 그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유색인종 배우이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천만배우로 등극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이안 감독이라는 점이 매우 솔깃했다. 물론 과거 <와호장룡>으로 격이 다른 액션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무협영화의 그것과 맨몸액션의 스타일은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안 감독의 전작들과 그의 연출력을 생각해 보았을 때 기존의 맨몸액션 영화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감독과 주연배우의 이 이질적이고도 환상적인 조합은 <제미니 맨>을 충분히 기대케 하는 요인이었다.



단순한 액션 영화로는 승부가 어려울 거라 판단했던 것일까. <제미니 맨> 은 여기에 복제인간이라는 소스를 끼얹는다. 글쎄, 복제인간 코드도 흔하고 뻔한 설정 아닌가. 이미 낡을 대로 낡은 클리셰들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궁금하기는 했다.


대략적으로 요약하자면,


주인공인 헨리(윌 스미스)가 너무나도 뛰어난 군인이어서 이제는 늙어버린 그를 대신해 그의 DNA를 이용한 그의 복제품을 만들게 되고, 이 비밀을 숨기려 그를 죽이고자 하는데 헨리를 죽이는 임무는 당연하게도 그의 복제품의 몫이다.


단 몇줄로 정리될 정도로 매우 간단한 스토리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영화의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액션 시퀀스가  담당하고 있고,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영화의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은 나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인상적인 시퀀스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콜롬비아에서 벌어지는 오토바이 추격씬이고, 하나는 부다페스트 지하묘지에서 헨리와 복제인간이 벌이는 육탄전 장면이다. 이 두 장면만큼은 장르영화로서 쾌감을 오롯이 전달하며 그나마 극장에서 볼만한 이유를 찾게 해 준다. 그 외 다른 액션씬들도 있었지만, 기억나는 건 두 장면뿐이다.




영화의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제대로 실패하고 있다. 헨리의 복제인간은 그를 만든 가짜 아버지의 명령으로 헨리를 죽이려 하는 적이었다. 그러다 차츰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결국 헨리의 아군이 되어 헨리와 함께 가짜 아버지를 처단하게 된다. 복제인간이 변하게 되는 동기와 과정이 헨리의 설교와 설명으로만 때워지고 있어서 영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계속적으로 복제인간의 감정 변화를 전시하고 있다. 마치 "복제인간도 똑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요"라고 강요하듯 외치는 꼴이다.


복제인간도 감정이 있다? 복제인간도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이것 또한 이미 수많은 sf 영화들에서 다루었던 주제 아닌가. 생각해보니 정말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영화이다. 막차를 타도 너무 늦게 탄 셈이 된 것이다.



차라리 액션 시퀀스를 더 갈고닦았으면 어땠을까. 영화 초반과 중반에 인상적인 액션씬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때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급작스럽게 무게를 잡으면서 액션보다는 설명에 집중하고 있다. 왜인지 모르게 복제인간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부터 갑자기 전투력이 떨어진다.


도대체 왜 그렇게 복제인간의 감정에 집착하고 의미부여를 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액션 영화 아니었던가. 이 영화는 복제인간의 눈물을 보여주기보다는 복제인간의 전투력을 부각하는 쪽이 더 맞았을지 모른다. 이러한 지나친 의미 부여와 설정은 누구의 판단인가. 혹시나 이것이 제작사나 작가의 의도가 아닌 이안 감독의 개인적인 연출 의도에 의한 것이라면 미안한 얘기지만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액션 영화는 찍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 속 복제인간 주니어는 얼핏 완전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좋은 유전자를 주입하여 월등한 능력치를 부여받았지만,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하나의 복제품으로서 그저 누군가의 지시만 따르는 그런 존재이다. 주니어가 자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제미니 맨> 도 주니어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좋은 유전자 (그럴듯한 소재, 세계적인 배우와 감독)를 주입하였지만 <제미니 맨> 은 <제미니 맨> 만의 이야기가 없다. 속편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나오게 된다면 영화 속 주니어처럼 <제미니 맨> 도 <제미니 맨> 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ps: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안 감독 커리어 최악의 작품이 될 확률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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