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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Dec 06. 2020

<콜>

압도적 캐릭터의 탄생

 한 명의 배우가, 하나의 캐릭터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정확하게 수치화 힐수는 없겠지만, 압도적인 아우라로 혼자서 극을 하드캐리 하는 그런 배우들은 종종 있었다. 가끔은 주인공보다 더 존재감 넘치는 활약으로 기억에 남은 악역도 있다. 뛰어난 연기력으로 아우라와 카리스마를 뿜어내 영화를 온전히 그 악역만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경우도 있다.  영화 <콜> 도 그런 경우다. <콜>은 원래 올 3월에 극장에서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결국 넷플릭스로 향했다.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배우 전종서의 존재감이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서 신인이면서도 유아인에게 결코 밀리지 않았던 그녀는 영화 <콜>에서 어쩌면 영화사에 남을 역대급 빌런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명의 배우가 차지하는 비중을 정확하게 숫자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 아마도 <콜>에서 전종서의 비중은 100%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종서는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오영숙'을 연기한 전종서의 연기는 최근에 본 악역 캐릭터 중 가장 충격적이다. 굳이 성별을 나누어 얘기하자면 한국 영화 역대 최고의 여자 악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는 내내 강렬히 기억에 남은 선배 악역들이 오버랩됐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 (하비에르 바르뎀),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최민식) 캐릭터가 떠올랐다. 그만큼이나 전종서의 연기는 뛰어났다. 이 어린 여배우가 연기에 몰입하느라 되려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사실 영화 <콜> 은 기시감이 느껴지는 설정으로 큰 기대가 되는 작품은 아니었다. 이런 소재의 영화, 드라마가 얼마나 많았던가. <프리퀀시>, <동감>, <시그널> 등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는 설정은 더 이상 신선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콜> 은 방향을 살짝 바꿔 이 오래된 뼈대에 공포 스릴러의 살을 붙이려 한다. 여기서 뻔한 클리셰들이 등장한다. 무속신앙과 퇴마의식, 연쇄살인 같은 공포 스릴러 영화의 재료들이 더해진다. 사용된 클리셰들은 초반에 힘껏 분위기만 잡다가 급하게 퇴장한다. 영화는 뒤로 갈수록 지루한 시간여행만을 반복한다. 과거가 바뀔수록 영화도 계속 방향을 잃는다. 영화 <콜> 은 매력적인 스릴러 영화가 되려는 순간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그럴듯한 장르 영화가 되려 할 때마다 뭐에 씐 듯 강박적인 타임 슬립을 진행한다.


 결국 이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건 전종서다. 이 영화에서 전종서는 흔들리는 난파선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선장 같은 존재다. 영화에서 보이는 오영숙의 살인행각이 납득이 안되기도 한다. 캐릭터의 범죄행위가 개연성이나 당위성면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느낌도 있다. 하지만 전종서의 연기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악역은 자고로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 개연성은 개나 줘버리는 특별한 아우라. 이유도 설명도 없이 죽이는 것. 그것이 공포영화의 빌런들이 가지는 그들만의 고유한 매력이다. 전종서가 연기한 오영숙이란 캐릭터도 선배 빌런들의 뒤를 이을 것이 분명하다.


 

 전종서의 기에 눌린 탓일까. 주인공 김서연 역을 맡은 박신혜의 연기는 다소 모자란 느낌이다. 난 그녀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잘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무난한 연기로 극에 폐를 끼치지 않는 정도의 그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정도의 연기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콜>에서 그녀는 다소 힘에 부쳐 보인다. 과거가 계속 바뀌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운명도 계속 변하는 이 영화의 특성상 그에 따른 복잡한 감정들이 요구된다. 박신혜는 '김서연'이라는 입체적인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에 조금 힘이 부치는 모양새다. 튀지 않고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지만 폭발하지는 못한다. 개인적으로 아역시절부터 응원하고 좋아하는 팬으로서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역대급 캐릭터의 탄생은 늘 반갑다.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떠오르는 신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영화 <콜>은 무엇보다 캐릭터가, 배우가 남는 영화다. <콜> 은 장르의 습성들을 따라가며 그럴듯한 모양새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종서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결과물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배우 하나는 확실히 남은 영화다.


 코로나 때문에 극장으로 가지 못하는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다. 개중엔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한 것이 꽤 아쉬운 영화들도 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영화들. 사실 <콜>도 그런 영화다. 많은 영화들이 내년으로 개봉을 미뤘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들을 내년으로 미뤘다. 가슴 아프지만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과거와 통하는 전화 같은 것은 없다. 어쩌면 이 자체가 공포이자 스릴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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