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hai park Dec 13. 2020

<힐빌리의 노래>

가족이라는 고질병

 가족의 불행이 대물림된다는 얘기는 굳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가정폭력, 음주나 약물, 범죄로 인한 가족의 불화가 부모세대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이어진다는 것. 현대의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한 인과관계처럼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환경이나 부모님의 직업과 인성 같은 것을 한 개인의 평가기준으로 삼는다. 부모의 잘못으로 자녀마저 덩달아 안 좋은 취급을 받는다면 자녀에겐 매우 가혹한 일이다. 어쩌면 이런 보이지 않는 차별이 '불화의 뿌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하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자녀들은 '나는 엄마 아빠처럼 절대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라고 늘 다짐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부모세대의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유전적으로 이어지는 어떤 질병들처럼 어두운 그늘이 세대를 가로질러 고질적으로 이어진다.

 



'힐빌리'는 미국 중서부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에 사는 가난한 백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종의 비하적인 표현으로 우리나라 말로 하면 '촌놈' 정도가 된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이 곳 출신의 성공한 변호사이자 사업가 제이디 밴스(J.D. Vance)가 쓴 자서전 형식의 회고록이 원작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등극됐고, 미국 사회의 민감한 부분까지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다.


 힐빌리 지역은 과거에는 주로 농업과 광업, 현재에는 기계산업에 종사하는 육체노동자들이 인구의 다수를 이룬다.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가난은 세대를 이어 대물림된다. 책의 저자인 제이디 밴스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희망이나 도전보다는 절망과 포기가 친숙한 사람들과 그런 환경 속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할아버지의 음주와 가정폭력으로 시작된 불화. 엄마는 약물중독에 수시로 남자가 바뀐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제이디도 자포자기하며 슬슬 가족의 고질병을 답습하려고 한다.


 하지만 조부모 세대부터 내려온 불행의 씨앗을 끊어내고 자수성가한 제이디 밴스. 그가 가족의 고질병을 극복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가족이다. 할머니의 강력한 지지와 혹독한 다그침으로 제이디는 불행의 고리를 끊어낼 용기와 동기를 얻는다. 끝내 보란 듯이 성공을 하며 이제 더 이상 가족을 불행하게 하는 고질병은 없을 듯하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원작이 일으켰던 화제나 반향에 비하면 다소 밋밋하다. 사실 제이디 밴스의 자서전이 주목을 끌었던 이유는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지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지역이었던 만큼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론 하워드 감독이 만든 드라마 <힐빌리의 노래>는 말 그대로 드라마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한 개인의 성공담에 대해서만 조명할 뿐 지역사회의 그늘진 면은 담아내지 못한다. 물론 2시간도 안 되는 러닝타임에 그 모든 걸 다 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성공담도 그다지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는 제이디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 보여준다. 제이디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며 이 가족이 얼마나 불행한지, 쉽게 말해 얼마나 막장 집안인지를 압박하듯 전시한다. 결론적으로 이런 방식은 지나치게 쉬운 선택임과 동시에 영화의 호소력을 잃게 만든다. 이전에도 많이 있었던 수많은 '개천에서 용 난다' 류의 영화와 드라마들. 안타깝지만 이 영화도 그 범주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너도 노오력하면 될 거야" "열정만 있으면 할 수 있어" 같은 어쩌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안일한 가르침 같은 영화다. 물론 제이디가 대단한 열정으로 엄청난 노력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원작의 내용이나 배경을 모르고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얘기에 그칠 수도 있다. 나도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사전에 대략 원작에 대한 배경을 알고 봐서 그런지 영화에 대한 오해를 피할 수 있었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한 개인의 성공 스토리 측면에서 보나, 지역사회의 아픔을 전달하는 측면에서 보나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제이디의 가족이 얼마나 불행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동원된 두 여배우 (에이미 아담스, 글렌 클로즈)의 연기만 빛을 발한다. 많은 언론들이 거론하듯 내년 오스카 시상식을 기대해봄직 하다. 다른 연기자들도 좋은 호흡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거장 한스 짐머의 음악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며 영화의 맛을 더하고 있다. 이 영화가 다소 싱거운 드라마임에도 끝난 후 여운이 남는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와 한스 짐머의 음악 때문이다. 밋밋하고 무색무취의 뻔한 드라마이지만, 보고 나면 그런대로 훈훈함이 가슴에 전해지는 작은 매력이 있는 영화다.



 책의 저자 제이디 밴스는 본인의 어두운 과거를 얘기하며 가족들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성공이 가족 덕분이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그 동네에 대해서도 여전히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든 사람이 무시하고 천대하는 나의 고향, 그리고 나의 가족. 벗어나고 싶어서 끝끝내 벗어났지만, 벗어난 그곳을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 하지만 그 고리를 영원히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가족이라는 고질병은 좀처럼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죽는 날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물론 제이디 밴스라는 사람은 성공적으로 극복을 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꼭 제이디의 삶이 정답인 것도 아니다. 애당초 사람의 일에 정답이란 게 있는가도 싶다.


 그러니 영화는 영화로만 생각하자. 자수성가한 사람의 이야기는 매력적이지만, 이야기는 다양할수록 더 좋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