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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Dec 19. 2020

<맹크>

비하인드 스토리의 비하인드 스토리

 미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테크니션 데이비드 핀처 감독. 그가 이번에는 1930년대 할리우드를 조명한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넷플릭스(핀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와 마인드 헌터를 연출)를 통해 고전 중의 고전 <시민 케인>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천재라 불리던 젊은 청년 오손웰즈의 <시민 케인>. 이 작품은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영화사의 가장 중요하고도 뛰어난 작품 1,2 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영화 <맹크>는 <시민 케인>의 각본가 '허먼 J. 맹키위츠'에 대한 이야기다. 몇몇 평론가들은 <시민 케인> 이 오손 웰즈가 아닌 맹키위츠의 영화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걸작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데이비드 핀처의 아버지 잭 핀처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핀처의 아버지가 쓴 각본을 토대로 만든 영화가 바로 <맹크> 다.


 <시민 케인>의 각본가 '맹크'를 따라가는 영화 <맹크>는 단순히 <시민 케인>의 비하인드 스토리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주인공 맹크(게리 올드만)의 현재와 과거의 행적을 쫓아가며 1930년대 할리우드에 대한 험담을 신나게 하고 있다.


  영화에서 현재는 1940년이다. 바로 맹크가 <시민 케인>의 각본을 쓰고 있는 시점이다. 이 현재 시점에서 영화는 플래쉬백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비춘다. 저명한 비평가이자 극작가인 맹크가 할리우드 거물들을 만나면서 겪는 일들이 게리 올드만의 명연기를 통해 펼쳐진다. 언론재벌과 거대 메이저 스튜디오의 담합과 부정, 경제대공황으로 인한 실직과 가난, 미국의 정치적 흐름과 이념 간의 충돌 등. 그 당시 할리우드와 미국 사회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맹크의 눈과 입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에서 보이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는 화려한 바벨탑 뒤에 추악한 인간군상들이 득실대는 정글 같은 곳이었다. 기만과 거짓으로 노동자들을 속이면서 자신들의 배만 부르게 하는가 하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프로파간다 필름을 제작한다. 맹크는 그 당시 시스템에 중심에 있던 사람으로서, 또 한 명의 예술가로서 번뇌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결국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로 한 그는 병상에 누워 <시민 케인>의 각본을 집필한다.


 <시민 케인> 은 후대의 뛰어난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작 개봉했을 당시에는 비평과 흥행면에서 쓴 맛을 봤다. <시민 케인>의 주인공은 '찰스 케인' 언론 재벌이다. 각본가 맹크가 만났던 실존인물이자 마찬가지로 언론재벌이었던 윌리엄 허스트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윌리엄 허스트는 <시민 케인>의 개봉을 막기 위해 엄청난 방해 공작을 펼쳤다.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영화사에 대한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듬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9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각본상 하나만 수상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시간이 흘러 유럽의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재발견되었고,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영화 <맹크>는 <시민 케인> 이 그랬던 것처럼 플래쉬백 기법을 유려하게 사용하면서 그 시절의 미국을 온전히 재현해낸다. 흑백으로 촬영한 영화는 그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화면 구성과 비율 카메라에 인물을 담아내는 방식까지 옛날 느낌 그대로다. 과거의 실화를 다루기 위해서 굳이 옛날 방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맹크>는 단순히 옛날 방식을 따라한 것이 아니다. <시민 케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기 위해, 어쩌면 오마주에 가까운 이 영화가 택한 방식은 <시민 케인>의 그것을 계승한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시민 케인>에 대한 예습을 필수적으로 요한다. <맹크>를 보기 전 <시민 케인>을 보는 게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시민 케인> 그리고 오손 웰즈에 대한 사전 정보를 미리 알고 보는 게 좋다. 더불어 맹크가 만나는 당시 할리우드의 여러 인물들과 미국 사회의 이슈들에 대해서도 알고 보면 좋다. 하지만 영화 하나 보자고 세계사 공부까지 하는 것은 암만 생각해봐도 아닌 것 같다. 대신에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와 오손 웰즈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고 보는 게 좋다. 모르고 본다면 이 매력적인 흑백 영화는 그저 낡고 오래된 필름에 불과할 뿐이다.


 이 영화가 내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는 것과 달리 일반 영화팬들에게 다소 미지근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평론가들과 달리 일반인들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보거나 따로 공부를 한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워낙에 유명한 <시민 케인>이기 때문에 제목 정도는 한 번쯤 들어봤을 수 있다. 그리고 일반 영화팬들 중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깊이를 가지고 있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영화팬이 다 그렇지는 않다. <맹크>는 사전 정보 없이 봤다가는 쏟아지는 대사와 이해하기 힘든 내용 때문에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 맹크를 연기한 게리 올드만의 빛나는 연기도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진입장벽이 높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작년에는 1960년대의 할리우드를 얘기하는 영화가 있었다.(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올해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를 얘기하는 영화가 나왔다. 전자가 영화광 감독의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였다면, 후자는 시스템의 그늘을 한 예술가의 눈으로 비추어준다. 어쩌면 둘 다 영화와 할리우드에 대한 애정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할리우드 시스템과 그다지 친해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넷플릭스와 4년간 콘텐츠 제작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연출자에게 100% 자유를 주는 넷플릭스의 방식이 앞으로 더 많은 유명 영화감독들이 넷플릭스와 협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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