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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Jan 03. 2021

<인비저블 맨>

정면돌파의 쾌감

 어렸을 때 이런 상상을 종종 해본 적이 있다. 투명인간이 되면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 나 혼자만 하던 상상을 친구들과 나눌 때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남자애들은 상상의 결과물들이 대개 비슷했다. 여탕을 훔쳐보겠다던지, 좋아하는 여자의 방에 들어가 보겠다던지 하는 매우 불손한 결과물들이었다. 사실 어린 마음과 호기심에 얘기한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매우 오싹한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훔쳐보기'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가해보라.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이겠는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공포'를 가지고 공포영화의 명가 블룸 하우스가 아주 매력적인 공포영화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블룸 하우스가 블룸 하우스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공포영화계의 오래된 그래서 이제는 너무 낡은 게 아닌가 했던 투명인간이란 소재를 꽤나 맛있게 요리했다. 1933년에 나온 투명인간 영화계의 조상님 <투명인간>(원제: The Invisible Man)의 제목마저 그대로 따오며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오래된 소재를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도 세련된 모양으로 포장한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투명인간에 대한 개념을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접근법으로 불필요한 도전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단순히 '보이지 않는' 그 불명의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의 소재가 어쩌면 불룸 하우스의 방식에 더 맞을 수도 있어 보인다. 그동안 이 제작사에서 창조한 공포들은 주로 이런 식이 었다. 장면의 재현보다는 분위기의 조성으로 공포를 주는 방식이 블룸 하우스의 시그니쳐였다.

 공포감을 더 극대화시키는 것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다. 주인공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는 남자 친구로부터 정신적 학대를 당하는 여성이다. 힘들게 도망쳐 남자 친구로부터 몸은 벗어났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상황은 아니다. 결국 '인비저블'이라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도 충분히 두렵지만,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고통을 주고 있는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어도 무서운데, 그게 나를 가두고 학대했던 사람이라면? 그 공포는 배가 될 것이다. 영화 <인비저블 맨>은 인비저블한 공포에 가스 라이팅의 심리 공포를 양념으로 더했다. 주인공 세실리아는 죽어서도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에게 조종당한다. 사람들로부터 의심과 불신의 대상이 된 세실리아는 이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의 각성이 시작된다. 나약하고 의존적이었던 주인공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은 뜬금없지만 주인공의 변화가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는 것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부분이 매우 통쾌하기 그지없다. 각성 후에 세실리아는 혼자만의 힘으로 투명인간의 정체를 밝히고, 자신을 괴롭혔던 남자 친구와 맞선다. 이 과정에서 육탄전도 서슴지 않는데, 스스로 위기를 헤쳐 나가는 모습이 매우 짜릿하다. 세실리아의 정면돌파는 영화적으로나 영화 속 인물인 세실리아에게나 가장 효과적이고 극적인 방법이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것은 결국 본인에게 달려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가 공포를 다루는 방식도 정공법에 가깝다. 쓸데없이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공포에 집중하고 있다. 적절한 효과음으로 긴장감을 일으키고 있으며, 빈 곳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정말 누군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영화상으로는 정말 누가 있는 것이겠지만) 착각도 일으킨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상황에 이입하게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비저블 맨>은 내용상으로는 최첨단 과학을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 자체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있다. 물론 투명인간의 비밀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 특수효과는 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컴퓨터 그래픽의 양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영화가 굉장히 매력적인 이유다. 주인공인 세실리아가 남자 친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첨단 슈트를 입고서 싸웠다면, 아니면 알 수 없는 신비한 초능력을 얻게 되었다면 이 영화는 아마 2020년 최악의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구조는 일견 단순해 보인다. 그저 투명인간과의 싸움이 전부인 것 같지만, 그와 동시에 정신적인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투를 함께 그리고 있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본인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인비저블 멘> 은 블룸 하우스에서 제작하고 유니버설 픽쳐스를 통해 배급이 된 영화다. 유니버설 픽처스는 현재 '다크 유니버스' 세계관을 계획, 구성하고 있다. 다크 유니버스는 1920~1950년대 유니버설에서 창조한 크리쳐들을 다시 리부트 하려는 유니버설만의 큰 그림이다.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늑대인간 등이 대표적이다. 투명인간도 다크 유니버스의 일원이다. 2017년 <미이라>개봉으로 시작된 다크 유니버스는 <미이라>의 실패로 좌초 위기에 부딪혔지만, <인비저블 맨>의 성공으로 다시 부활의 가능성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니버스'라는 단어에는 한참이나 모자란 게 사실이다. 계획대로만 잘 진행된다면 마블이나 DC만큼 매력적인 세계관이 구축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순조롭게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의 퀄리티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인비저블 맨> 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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