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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Jan 16. 2021

<차인표>

이것은 변신인가 발악인가

 배우로서, 연예인으로서 그의 이력은 조금 특별하다. 서서히 내공을 다지며 실력을 쌓은 후 빛을 보게 된 우여곡절의 스타 탄생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몇 개의 단역을 거친 후, 첫 주연을 맡은 드라마 한 편(사랑을 그대 품 안에)으로 단숨에 스타가 됐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라는 말은 바로 그를 위한 수식어였다. 스타가 되기 위한 길이 더 좁아지고 높아진 요즘엔 이런 식의 성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마지막 벼락스타인 셈이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데뷔 초기 때 만들어진 것이다. 각지고 굵은 이목구비, 강렬한 눈빛, 근육질 몸매 등의 차인표스러움은 변하지 않는 그의 상징이다. 그 유명한 손가락 제스처와 색소폰을 연주하는 장면들은 아직까지도 차인표라는 이름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데뷔와 동시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의 이후 커리어는 어땠을까.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도 꽤 있었다. 연기자로서 트로피도 모자라지 않게 받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뜸해진 게 사실이다. 현재 차인표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아직도 유효한 데뷔 때의 그 강렬했던 인기. 그리고 분노의 양치질과 모 샴푸 광고가 대부분일 것이다. 누군가는 신애라 남편, 자원봉사자 등의 배우 외적인 이미지로서 기억할지도 모른다. 화려했던 명성도 이제는 점점 얼룩이 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차인표에 대해 전성기가 정말 지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전성기가 아직 안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참 애매하다. 개인적인 느낌의 그는 아직 추억이라 부르긴 아쉽고, 현재 진행형의 스타로 생각하기엔 영 석연치가 않은 느낌이다. 배우로서 이런 애매한 상태를 본인도 느꼈던 것일까. 자기 자신의 얘기를 가지고 오랜만에 우리 앞에 섰다. 드라마가 아닌 영화로. 영화의 제목도 <차인표>다.


 영화 <차인표>는 상당히 파격적인 영화다. 어디까지나 차인표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코미디 영화에 도전하고 있으며, 시종일관 몸을 사리지 않는 혼신의 망가짐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내용도 실제 그의 현재 상황과 다르지 않다. 전성기가 살짝 지난 한때의 슈퍼스타. 배우 차인표가 연기하는 <차인표>의 주인공 '차인표'는 한때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불러주는 곳 없는 외로운 처지의 연예인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과거의 영광에 빠져서 살고 있다. 허세만 가득하고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 일쑤다. 실제의 차인표는 현재 어떤 성격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영화 속 캐릭터의 설정은 다른 영화들이 보여줬던 비슷한 캐릭터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따른 모양새다.


 <차인표>는 실제 차인표의 현재 상황과 묘하게 중첩이 된다. 아마도 다분히 의도된 기획이겠지만, 그 부분이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중요한 포인트다. 진짜 차인표와 영화 속의 차인표는 어쩌면 다른 인물이 아닌 같은 인물인 것이다.(당연한 얘긴가?) 영화 속의 차인표처럼 현실의 차인표도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물론 100% 진실은 아니겠지만, 합리적 의심은 해봄직 하다. 그가 여전히 잘 나가는 배우였다면 이런 무리수를 두는 시도는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tv를 통해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던 그였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다. 평범하고 단순한 코미디 영화. 더 이상 부연 설명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고급스러운 풍자나 해학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또 마냥 질 낮은 개그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상황과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해 소소하게 웃음을 주고 있다. 장르영화로서 어느 정도는 본분을 다하고 있는 셈인데, 결국에 이 영화가 인상적으로 남기 위해선 타이틀 롤을 맡은 차인표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식의 발로였는지 차인표는 영화 <차인표>에서 그야말로 고군분투를 한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려 애를 쓰고 또 쓴다. 이것은 과감한 변신일까, 애잔한 발악일까. 어찌 됐건 중요한 문제는 이 변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어딘가 불편함이 보인다. 맞지 않는 모습을 억지로 끼워 맞춘 모습이다. 그는 코미디 영화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든다. 좋은 연기자라면 장르를 가리지 말아야 할 텐데 이 영화에서 그는 마치 연기를 배우고 있는 아마추어의 모습 같다. 그가 연기를 잘한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못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굉장히 의외였다. 아마 그가 요즘에 활동이 뜸한 건 그에 대한 수요가 없어서 아닐까 라는 조심스러운 짐작도 해보게 된다.



 영화 <차인표>는 주인공 역의 차인표만 옷을 잘 맞춰 입었다면, 나름 나쁘지 않은 장르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의 시도는 과감한 변신보다는 애잔한 발악에 가깝게 되었다. 웃자고 본 영화에 안타까움과 세월의 무상함만 느꼈다. 이 처절한 자기 객관화는 앞으로 그에게 더 많은 숙제를 남겨주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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