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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Feb 07. 2021

<승리호>

Made in Korea

<7광구>와 <염력>. 한국영화의 망작 리스트를 얘기할 때 늘 거론되는 작품이다. 나는 아마도 이 영화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처참한 완성도에도 내가 긍정적으로 바라본 이유는 새로운 '시도'에 있었다. 크리쳐와 초능력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불모의 영역이다. 감히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높은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한 그 기개를 높이 샀던 바이다. 하지만 도전정신에 걸맞지 않은 빈약한 구성은 결국 사람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이러한 도전들은 여지없이 쓴잔을 들이켰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와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정도가 유일한 흥행작인데, <디워>는 노골적인 애국 마케팅의 결과였고, <부산행>은 10번 중에 1번 나오는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물론 <부산행>의 완성도는 이전의 실패작들에 비해 조금 더 나은 수준이기는 하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에 박한 평가를 내리며 하는 얘기는 이런 것들이다. 개연성 부족, 부실한 스토리, 억지 감동, 빈약한 서사, 허술한 내용. 물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버금가는 완성도를 보여주어야 할 텐데,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감독이 다 봉준호는 아니다. 그리고 이건 조금은 과한 욕심이다.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다. 한국 상업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지나치게 평론가적인 잣대는 거두어도 되지 않을까. <킹덤>이나 <스위트홈> 같은 드라마도 첫술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괴물, 초능력, 좀비 등으로 소재의 다양화를 꿈꾸던 한국영화는 이제 그 외연을 우주로까지 확장시켰다. 한국 최초 SF영화 <승리호>는 원래 지난여름에 극장에서 개봉 예정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름에서 추석, 추석에서 연말로 개봉이 밀리더니 결국 넷플릭스로 향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승리호>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다.


SF라는 새로움에 도전했던 <승리호>는 첫 도전만에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기술적 성취를 얘기 안 할 수가 없겠다. 2092년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니 만큼 장면의 대부분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졌다. <승리호>가 구현하는 우주의 퀄리티는 놀라울 따름이다.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때깔'을 한국영화에서도 보게 된 것이다.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한국영화 그래픽 기술의 가능성은 <승리호>에서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한국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사람들이 많이 얘기했던 개연성이나 서사 스토리는 어떨까. 서사적으로 완벽한 구성이라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욕먹을 정도의 구성은 아니다. <승리호>는 해당 장르의 전형적인 클리셰들을 따르고 있으며, 한국식 유머와 약간의 신파적 요소를 더하고 있다. 꽃님이나 업동이 캐릭터를 통해 나름의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승리호>에서 보이는 클리셰들이나 유머와 신파를 두고 비판을 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장르영화로서 <승리호>는 한국영화의 장(場) 안에서 그 존재감을 뚜렷이 내세울만하다. 서사의 호불호는 있을 수 있겠으나, 이 영화가 거둔 놀라운 기술적 성취까지 외면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이 있다. 우주 청소선 '승리호'의 도전과 결과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어쩌면 후에 나올 비슷한 한국영화들의 이정표가 될만한 작품이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만, 사실 이 정도면 배가 많이 부르진 않아도 그럭저럭 허기는 채운 셈이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낀다. 아무리 OTT 플랫폼의 시대라고 해도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는 있기 마련이다. 언젠가 코로나가 끝나면 <승리호>가 아이맥스 스크린에서 다시 비행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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