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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Feb 16. 2021

<페어웰>

안녕이란 말 대신 작은 미소 하나만 주면 돼

선의의 거짓말 이란 게 있다. 거짓말이란 원래 나쁜 것이지만,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닌 그 반대의 목적으로 하는 거짓말이 있다. 영화 <페어웰> 은 이 선의의 거짓말로부터 시작된다.


<페어웰>은 이 영화의 감독 룰루 왕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개봉 당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이 이어졌고, 주인공 빌리 역의 아콰피나는 202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원래 2020년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는 코로나 여파로 1년 만에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




주인공 빌리(아콰피나)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부모의 이민으로 어렸을 때 미국으로 넘어왔다. 할머니가 암 선고를 받게 되자 빌리와 빌리의 가족들은 중국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일본에 사는 빌리의 사촌들까지 오랜만에 중국에서 가족이 모이게 된다. 할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을 할머니(어머니)와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할머니는 가족들이 모이는 이유에 대해 모르고 있다. 가족들은 할머니에게 빌리의 사촌 동생의 결혼식 때문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 그 사실을 숨기는 것. 이게 과연 '선의' 로서 용납 가능한 거짓말일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주인공 빌리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에게 진실을 숨기는 가족들을 보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따지기도 하고 화도 내본다. 가족들의 반응은 단순하면서도 일관적이다. 그게 '중국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가족들의 정성 어린 연기에 힘입어 사촌동생의 가짜 결혼식은 성공적으로 치러진다. 결국 할머니에게 좋은 기억만 선물해주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족들의 작전은 결국 성공을 했다.



<페어웰>은 거짓말에 대한 가치판단을 얘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별을 앞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전형적인 가족 드라마다. 거짓말이 옳고 그른지 보다는, 죽음을 앞둔 가족에 대한 '마음'을 봐야 하는 영화다. 중국의 전통이라고 하는 이 거짓말 문화는 우리에겐 참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가족들의 애틋하고도 슬픈 마음은 만국 공용어가 아닐까 싶다.


사촌동생의 가짜 결혼식은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축제처럼 느껴진다. 가족들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애써 슬픔을 감추기 위함인지, 진심을 담아 할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할머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인다. 선의의 거짓말은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었나 보다. 이상하게만 느껴진 중국의 전통이 나름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영화에서 양념처럼 그려지는 게 이 전통에 대한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살아온 빌리는 가족들의 거짓말에, 이 전통이라는 것에 반발한다. 가족들과 사사건건 부딪히기도 한다. 또한 빌리는 어렸을 때 중국의 모습과 바뀌어버린 현재 중국의 모습에 어리둥절해한다. 영화는 빌리의 모습을 통해 전통과 현재의 갈등과 해결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드라마에 무게감을 주려했던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겉핥기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 <페어웰>은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가족 간의 사랑, 그리움 같은 마음에 대한 영화다. 따뜻한 필체로 써 내려간 이야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가족들의 거짓말은 때로는 슬프고 한편으론 웃기다. 그 소동을 보고 있자니 입과 눈은 웃고 있는데, 코는 찡긋해지는 묘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유년시절의 기억 끝자락에 있는 할머니 냄새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안녕이란 말 대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미소로서 할머니를 보내기로 한 이 가족의 거짓말이 참 사랑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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