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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Feb 20. 2021

<헌트>

사람이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있냐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입에 재갈이 물린 채로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깨어난다. 한적한 들판. 열쇠를 찾아 입에 재갈은 풀었다. 그리고 들판 한가운데 컨테이너 박스 안에 무기도 손에 얻게 되는데. 그 순간 쏟아지는 총알. 도망치는 사람들. 죽는 사람들.


영화 <헌트>는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는 이야기다. 공포영화 명가 블룸 하우스에서 제작한 <헌트>는 사냥꾼과 사냥감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2012년에 나온 동명의 덴마크 영화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2020에 나온 미국판 <헌트>의 사냥은 좀 더 직접적이고 물리적이다. <헌트>에서 나오는 사냥감(피해자)들은 대부분 영화 시작과 함께 죽는다. 초반에 몰아치는 살육의 현장은 이 영화의 장르를 명확하게 해 준다. 공포 영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헌트>는 이 부분에 있어 나름 꽤나 신선하다.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좋아할 만한 영화다.


사냥감들은 도대체 누가 왜 자신들을 죽이려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은 오로지 스노볼&크리스털(베티 길핀) 뿐이다. 그녀는 사냥꾼들이 설치해 놓은 함정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사냥꾼들을 혼자의 힘으로 모조리 해치운다. 여자 주인공의 맨몸 액션도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영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액션과 공포의 적절한 밸런스가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뒤에 설명되는 영화의 메시지도 의미심장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장르물로서 그 매력이 충만한 영화다.



사냥꾼들의 정체는 진보 엘리트들이었다. 부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올바름과 젠더 감수성을 옹호하는 극우 보수 세력에 정반대 편에 있는 사람들. 이들이 사냥을 계획하게 된 이유는 사냥감들한테 있다는 게 영화 속 사냥꾼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있지도 않은 일을 마치 진짜 있는 것처럼 가짜 뉴스와 음모론의 선동된 극우 세력들. 그 때문에 엘리트들은 회사에서 잘리고, 주식이 떨어지고,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욕을 먹는 등 본인들 말로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그래 그럼 너네가 진짜라고 믿는 일이 진짜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라는 마음으로 살인을 계획하게 된다.


인간사냥의 내막은 결국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간 대립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는 않다. 정작 이 영화의 유일한 생존자인 크리스털은 그런 거 따위엔 관심 없는 인물이다. 비슷한 이름으로 착각해서 사냥꾼들이 잘못 선택한 인물이다. 결국 사냥꾼들은 모두 그녀에게 죽임을 당한다.


영화 속의 사냥꾼들은 인종문제와 성평등, 환경문제와 채식주의에 대해 집착하며 신봉하지만 그래 봤자 영락없는 살인자다. 이들의 말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공허한지 영화를 보다 보면 느끼게 된다. 또한 영화는 사냥감들에 대한 조롱도 보여주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음모론과 총기에 대한 애착은 극우 보수세력에 대한 돌려 까기인 셈이다. 영화 <헌트>는 두 진영 간의 싸움을 '진짜 살인'으로 재현하며 극단적인 혐오가 얼마나 무섭고 또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알려준다. 사냥꾼들의 살인은 명분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들이 말하는 살인의 이유는 뒤집어 보면 그들이 죽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헌트>에서 일어나는 살인행각은 사실 어떠한 이유도 없어 보인다. 그들이 주장하는 살인에 대한 명분은 궤변에 불과할 뿐이다. 이유는 있지만 이유가 없는 살인이다.



영화 <헌트>는 이념 간의 대립을 물리적 대결로 끌고 와 여기에 장르의 매력을 더했다. 단순한 공포 스릴러로 보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곳곳에 숨겨 놓은 정치적 코드와 맥락을 이해하고 보면 더 재밌을 작품이다. 참고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고 영화를 접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최근에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에도 이런 일들은 많이 있다. 각자 자기편에 서서 반대쪽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각자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있다. 하지만 서로가 명분이라고 내세우는 논리는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은 그저 헛소리처럼 들린다. 적절한 비판을 넘어선 극단적 비난은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의심과 믿음이 확신이 되어 절대적인 진리가 될 때 논리와 이유는 사라진다. 물리적 살인이든 사회적 살인이든 결국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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