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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Mar 24. 2021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한국에도 컬트 영화가 있다면

컬트(cult)란 일종의 문화현상을 말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단어의 뜻을 검색해보니 '특정 대상에 열광하는 문화적인 현상'이라고 나온다. 그중에서도 컬트 영화는 '소수의 열광적인 팬을 가진 영화'라고 검색이 된다. 즉, 컬트 영화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은 얻지 못해도, 소수의 마니아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영화라 말할 수 있겠다. 극장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후에 입소문을 타고 마니아들에게 선택받은 영회들. 컬트 영화는 공포, 코미디, 스릴러, 액션 등등 어느 하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기발함과 독특함이 이런 영화들의 특징이다 보니 특정 장르의 점유율이 다소 높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모든 장르를 뒤섞어 놓기도 한다.


한국에도 이런 컬트 영화가 있다면 신정원 감독의 작품들이 아마도 가장 가까울 것이다. 그는 <시실리 2km>를 시작으로 <차우>, <점쟁이들>까지 독특한 스타일의 코미디 영화로 소수의 열렬한 추종자를 양산했다. 그의 영화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스타일로 많은 대중들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부터는 끊임없는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시실리 2km>는 임창정 배우와 우현 배우의 명장면(형님을 형님님으로 부르지 못하는..)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으며, 한국 코미디 영화의 숨겨진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점쟁이들> 이후 8년 만에 발표된 그의 신작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여전한 신정원 감독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신정원 감독의 작품에서 주로 사용된 기본양념은 서스펜스였다. 조폭과 마을 사람들의 대립, 멧돼지를 쫓고 쫓기는 사람들, 귀신을 잡는 사람들. 그의 영화 속 주요 얼개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 상황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특유의 유머가 서스펜스 속으로 쓱 발을 들여놓는다.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두 가지 양념을 버무려 독특한 맛을 구현한 셈인데, 여기가 바로 그의 영화가 호불호가 나뉘는 부분이다. 그는 힘을 줘야 할 때 도리어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만듦으로써 고유한 코미디 스타일을 획득했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죽지 않는 상황들의 연속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조장하는 것은 외계에서 온 생명체다. 외계인과 평범한 인간들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서로를 죽이기로 모의한 밤에 누구도 죽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관심사는 그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관객들을 황당무계함으로 빠뜨릴까 하는 것이다.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과 사건들은 이 영화의 색깔과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코드가 통하는 사람은 그의 신작이 매우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영화는 그 사람 인생에 최악의 영화로 남을 공산이 크다. 그만큼 취향을 많이 타는 영화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의 문제가 아니다. 신정원 감독의 작품세계가 원래 그런 것 일 뿐이다.


아쉬운 점은 특유의 코미디 감각은 여전하지만, 왠지 모르게 영화가 낡아 보인다는 점이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줄곧 2000년대의 느낌, 그러니까 <시실리 2km>를 처음 봤을 때 느낌과 비슷하다. 아마도 상황을 만들고 웃음을 주는 방식이 늘 비슷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감각에 비해 부족한 연출력, 세련되지 못한 촬영과 편집 등이 이 영화를 마치 옛날 영화처럼 보이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소 조악한 부분도 특유의 매력이라고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코드가 맞아야 가능한 거겠지만.



신정원 감독의 작품들은 한국영화의 지도 안에서 확실히 외딴곳에 있다.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그의 작품들은 다수 대신 소수의 선택을 받으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비록 네 작품에 불과하지만 10년 넘게 꾸준히 한우물을 파고 있다는 건 인정을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런 창작자의 뚝심이 한국영화의 두께를 늘리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스타일이 성공하면 우후죽순처럼 태어나는 아류작들 속에서 홀로 외딴섬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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