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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Mar 31. 2021

<고질라 VS. 콩>

여전히 우리에게 '극장'이 필요한 이유

바야흐로 OTT 플랫폼의 시대다. 넷플릭스를 비롯하여 왓챠, 웨이브, 티빙,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훌루, HBO맥스, 애플 TV+ 등등. 이제는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볼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은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문화생활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 이후 대형 극장과 멀티플렉스들이 폐업을 고민할 때 넷플릭스와 그의 형제들은 오히려 문전성시를 이뤘다. 코로나 이후로 극장에 자주 못 가서 답답해하는 나를 보며 한 친구는 이렇게 얘기를 했다. "왓챠에서 보여주지 않을까, 이제 새로운 세상이잖아." 바로 <고질라 VS. 콩>의 예고편을 보고 했던 얘기다.


물론 OTT 플랫폼을 통해서 다수의 그리고 양질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세상이 변한 만큼 그런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보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극장을 필요로 하는 영화들이 있다. 핸드폰이나 노트북, TV가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제아무리 자기네 집에서 고스펙의 홈씨어터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도 극장의 그것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막말로 집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아이맥스 스크린을 집안에 설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영화들은 목적이 아주 뚜렷하다. 깊은 감상이나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영화들. 어떤 장르가 됐던 그런 영화들은 목적하는 바를 눈 앞에서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고질라 VS. 콩>의 목적은 제목이나 포스터 그 어느 것을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두 괴수 고질라와 콩의 대결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목적을 알아차렸다면 영화의 감상도 그 목적에 맞추면 된다. 영화를 보면서 사건의 인과 관계를 애써 찾으려는 행위는 오히려 영화 감상의 방해가 될 뿐이다. 이전에 나왔던 <콩: 스컬 아일랜드>,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런 거 몰라도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크게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 물론 미리 접하고 이 영화를 본다면 조금 더 재밌게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 영화의 목적인 거대 괴물들의 대결을 영화는 얼마나 잘 보여주고 있을까.


고층빌딩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버리는 두 괴수는 일단 등장부터 엄청난 크기로 압도한다. 이건 필시 큰 화면으로 봐야 할 텐데, 두 괴물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 자체가 대단한 시각적 즐거움이다. 이들의 본격적인 대결은 어떨까. 주인공들의 육중한 무게를 생각해 봤을 때, 이들의 결투가 박진감과는 거리가 멀거라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마치 인간과 사람이 1대 1 대결을 벌이는 것처럼 괴수들의 액션 시퀀스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모양새다. 의심의 여지없는 뛰어난 그래픽은 두 괴물의 싸움을 아주 그럴듯하게 만든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것들이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상당히 인상적인 '체험'이다.


규모의 액션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이 이 영화의 '소리'다. 두 주인공이 말을 못 하는 캐릭터이다 보니 고질라와 콩의 괴성과 육성은 이 영화의 중요한 핸들이 된다. 결투 장면에서의 포효와 소강상태에서의 숨소리 같은 것들은 이 영화에서 그나마 '감정'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설명충 같은 인간 캐릭터들 보다도 훨씬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거대한 스케일 뒤로 흐르는 사운드트랙은 이렇다 할 선율은 없지만, 영화의 규모를 더욱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모로 봤을 때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될 이유가 분명하다. 만약에 아이맥스보다 더 큰 상영관이 있다면, 아니 그보다 더 큰 스크린이 있다면... 어쨌든 이 영화 <고질라 VS. 콩>은 가능한 가장 큰 화면으로 봐야 되는 영화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영화의 스케일이 이 영화의 치명적 단점이기도 하다. 사실 거대 괴수의 대결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의 장점은 없다. 그래서 만약 이 영화를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본다면 백이면 백 재미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가 되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텔레비전의 폭발적인 보급이 일어났다. 할리우드는 위기에 빠졌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TV에서 볼 수 없는 큰 스케일의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블록버스터'의 시작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대는 변했다. 이제는 굳이 극장을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은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극장을 필요로 하고, 극장이 필요로 하는 영화들이 있다. 광활한 우주, 대규모의 전투, 슈퍼히어로의 활약, 드넓은 자연, 화려한 액션. 이런 영화들은 아직도 넓은 화면을 계속 찾고 있다. 온전히 그들을 담아낼 그릇을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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