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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pr 11. 2021

<자산어보>

바다향 보다 강한 사람 냄새

1801년 조선 왕실은 천주교, 이른바 서학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한다. 순조 원년 신유년에 일어난 박해라 하여 '신유박해'라 부르고 있다. 이 사건으로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다. 신유박해와 관련된 인물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 일 것이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 정약종-정약전은 천주교를 받아들임으로써 모진 고문과 박해를 받았는데, 정약종은 끝내 참형에 당하고 정약용과 정약전은 목숨만은 건져 유배를 가게 되었다.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동생 정약용은 강진으로 각각 떨어지게 되었다.


정약용이 유배시절에 쓴 책들이 그 유명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이다. 그리고 정약전이 쓴 책들은 <표해시말>, <자산어보> 등이다. <표해시말>은 문순득이란 사람의 표류기를 담은 일종의 기행문이다. 그리고 <자산어보>, 이 책은 조선 시대에 나온 어류도감으로 영화 <자산어보>는 이 책의 집필과 제작에 숨겨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흔히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이준익 감독의 사극은 믿고 본다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의 남자>, <사도>, <동주>에 이르기까지 작품성과 대중성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빼어난 만듦새를 자랑했었다. 다소 결은 다르지만 <평양성>이나 <황산벌> 같은 작품도 코미디 영화로서 준수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영화 <자산어보>도 이준익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첫째로 꼽을만한 이 영화의 장점은 빼어난 영상미에 있다. 흑백의 화면으로 담아낸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은 두 눈을 무척이나 즐겁게 해 준다. 흑백의 장면이라 그런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보통 감상(鑑賞)한다라고 얘기를 한다. 그런데 이 감상이란 단어가 미술이나 음악 등 다른 예술장르에서도 사용된다. 이 말 그대로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는 하나의 미술작품을 음악과 함께 '감상' 한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는다. 바다를 무대로 하기 때문일까. 이준익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른 특별한 시청각적 경험이 영화 <자산어보>에는 있다.



어류도감의 제작기를 다룬 영화라고 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물고기나 해산물이 아닌 사람이 있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축은 정약전(설경구 배우)과 흑산도 청년 창대(변요한 배우)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나오는데, 이 사제 관계는 영화 속에서 계속 바뀌고 있다. 때로는 약전이 때로는 창대가 서로의 스승이 된다. 이 두 남자의 관계에서 보자면 참으로 멋진 버디무비가 아닐 수 없다. 설경구 배우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 이어서 젊은 남자 배우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정도면 브로맨스 맛집으로 인정해도 될 듯하다.


또한 영화 <자산어보>에는 헐벗은 민초들의 삶이 녹아 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의 표정이 장면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삼정의 문란으로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삶의 희망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흑산도와 <자산어보>에 있다.


창대라는 인물은 이런 흑산도 주민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캐릭터다. 그는 양반집의 서자로 태어나 과거시험도 보지 못하는 처지이지만 틈만 나면 책을 보는 청년이다. 낮에는 물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밤에는 사서삼경을 읽는다. 그의 배움은 곧 마을의 희망이 된다. 이 희망은 약전과 창대의 뜨거운 사제간의 우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산어보> 속에서 나타나는 정약전의 호기심 가득한 모습과 창대의 열정 어린 얼굴, 마을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맑은 표정들은 바닷물에 떠 있는 햇살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그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나는 영화다.


두 명의 주인공을 받치는 인물들의 활약도 눈이 부신데, 다수의 명품조연들 대부분이 우정출연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될 만하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베테랑 배우들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이 영화의 맛을 더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창대의 회심과 결심을 위해 설정한 영화 후반부의 전개가 다소 과하고 억지스럽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그 당시에 지방의 관리들이 진짜로 그렇게 못되고 나빴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봤을 때는 그 표현방식이 매우 직접적이라 조금은 뻔한 느낌이다.



영화 <자산어보>는 유배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학자와 청년, 임금과 백성, 관리와 평민들의 이야기가 있다. 사실 책과 물고기는 핑계고 이 영화는 무엇보다 사람에 집중하는 영화다. 그리고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정약전과 창대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창대가 끝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에는 사람에 대한 희망이 있다. 사람이 이뤄놓은 결과물이 아닌 사람 자체에 대한 희망, 몸소 역사의 바다에 몸을 맡긴 파랑새 같은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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