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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May 09. 2021

<찬실이는 복도 많지>

어디 찬실이 뿐이겠어

영화의 제목인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말은 어쩐지 반어법처럼 들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찬실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너무나 박복한 환경에 놓여있다.


이찬실, 그녀는 40살의 미혼 여성으로 20년 가까이 영화 프로듀서로 일했다. 같이 작업하기로 한 감독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녀는 졸지에 백수가 됐다. 그녀를 불러주는 다른 현장은 없었다. 벌이도 없고 돈도 없는 그녀는 산동네 단칸방에 살며 친한 여배우 동생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근근이 입에 풀칠만 할 뿐이다. 청춘을 바쳐 일한 곳에서는 어떠한 업적도 이뤄내지 못했고, 그녀 앞에 있는 것은 불투명한 미래와 비루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찬실의 불안함을 다루는 방식은 동정이나 슬픔보다는 따뜻함과 유머다. 강말금 배우가 연기한 이찬실이라는 인물은 무너지는 현실 앞에서도 순수하고 긍정적인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녀를 향한 걱정들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충실할 뿐이다. 영화는 이런 이찬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위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이 영화의 유머도 찬실이 겪는 일련의 상황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의 주제와 캐릭터가 일맥상통하는 또 하나의 예시가 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순간은 영화 속에서 찬실이 위로를 받는 순간과 거의 일치한다. 평소에는 강해 보이고 긍정적이던 찬실도 약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마다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것이 장국영(김영빈 배우)이라는 캐릭터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는 찬실과 우리들의 '첫 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열정, 사랑, 꿈같은 우리가 어렸을 적 처음으로 느꼈던 '그 어떤 것들의 총집합체'. 장국영은 우리들의 그 처음을 인물화 시킨 캐릭터다. 찬실이 영화를 그만두기로 한 날 쪼그려 앉아 울고 있던 장국영의 모습은 마냥 코믹한 장면만은 아닌 것이다.


장국영과 찬실의 에피소드가 다소 환상적이라면, 주인 할머니(윤여정 배우)와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면이 있다. 마치 모녀관계 같은 둘은 같이 밥을 먹고 글을 읽고 시를 짓는다. 굳이 구분하자면 할머니가 '오즈 야스지로'이고, 장국영이 '크리스토퍼 놀런'이 되는 것이다. 할머니가 쓴 시를 보며 찬실은 울음을 터뜨리는데 왜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는 짧은 문구에 찬실은 그만 억눌렀던 감정을 쏟아내는데, 이것이 사랑의 상실 때문인지, 과거에 대한 후회 때문인지, 자기에 대한 연민인지, 그도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어쨌든 찬실은 할머니를 통해 위로를 받고 있으며 그 위로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장국영은 찬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좀 더 직접적인 위로를 전하고 있다. 사실 찬실만큼이나 중요한 캐릭터가 이 장국영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줄곧 찬실로 하여금 진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장국영이 영화 초반부 찬실에게 "언제든지 자기를 보러 오라"는 말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라는 이 영화의 숨은 메시지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장국영은 찬실의 또 다른 자아나 다름없는 것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이찬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작지만 큰 위로를 주는 영화다. 그 위로라는 것을 한마디로 하자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너무 애쓰지 마, 무엇보다 너를 사랑하렴...' 뭐 이런 얘기가 될 듯하다. 사실 '힐링'을 무기로 하는 영화나 책들은 한동안 너무나도 많이 나왔었다. 이 영화도 크게 본다면 그런 '힐링' 콘텐츠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다소 뻔하고 물릴만한 주제가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은 바로 이찬실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생명력과 매력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찬실을 연기한 강말금이라는 배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 이찬실뿐이겠나. 인생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영화 속의 이찬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찬실이를 보면서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은 그녀의 대책 없는 순진무구함에 있다. 모진 현실에도 어쩌면 바보 같은 희망을 계속 꿈꾸는 것. 찬실의 순수한 억척스러움이 부럽기도, 귀엽기도, 사랑스럽기도,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하다. 현실은 결코 영화와 같지 않음을 알기에 이찬실이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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