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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Mar 07. 2021

<미나리>

보편적이어서 더욱 특별한

미나리는 주로 동아시아에서 재배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벌레와 질병에 저항력이 강하고 생명력이 끈질긴 것이 특징이다.(출처 나무위키) 억센 생명력의 식물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그는 부모님의 이민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아칸소주가 <미나리>의 주요 배경이다.


<미나리>는 작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미국 내에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 수상 릴레이는 한국에서도 매일같이 화제가 됐다. 지난 2월 28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도 수상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비록 미국 자본으로 만든 미국 영화지만, 전적으로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보니 국내에서도 <미나리>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 상황이다. 작년에 <기생충>에 걸었던 기대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영화는 8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메리칸드림의 바람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그 시점이다.


가장인 제이콥(스티븐 연)과 아내 모니카(한예리), 두 명의 자녀들 앤(노엘 케이트 조)과 데이비드(앨런 킴)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아칸소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우리들(제이콥과 가족들)만의 농장을 갖기 위해서다. 농장을 일구고 수확하고 그것을 통해 아메리칸드림을 진정한 자신만의 꿈으로 실현시키고 싶은 제이콥의 욕심 때문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그들은 미국 내에서도 아시아인이 거의 없는 아칸소로 오게 된 것이다. 농사를 위한 '흙'은 비옥할지언정 그들이 발 딛어야 하는 '땅'은 척박하기 그지없는 환경이다. 그들은 철저한 이방인으로 만만치 않은 환경에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수확하고, 자녀를 돌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가족들의 이야기. 어쩌면 가족이라는 것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 같기도 하다. 이런 모습은 비단 미국이라는 나라, 한국인이라는 민족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동과 정착, 적응과 성장이라는 전형적인 가족 서사가 <미나리> 안에 담겨 있다. 마치 먼 옛날 선사시대의 조상들이 먹을 것을 찾아 이동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미나리>가 가지는 이야기의 보편성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 곳, 어느 때에 갖다 놓아도 어울리는 이야기다. 이런 보편성이 이 영화의 가장 크고 특별한 매력이다.



다소 뻔한 이야기가 빛이 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정이삭 감독의 사려 깊은 연출을 이야기 안 할 수가 없겠다. <미나리>의 장점 중 하나는 이 영화는 가족 구성원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그 인물에 대해 깊이 공감이 간다는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가장의 무거운 어깨. 자녀를 돌보고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엄마&아내의 예민한 피로감. 맏이로서 누나로서 동생을 보살피고 애써 의젓하려 하는 딸. 호기심 많고 강해지고 싶지만 아직은 무서운 게 많은 막내아들. 무식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따뜻한 할머니. 영화 <미나리>는 아빠의 입장에서, 아내의 입장에서, 자녀들의 입장에서, 할머니의 입장에서 그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놀라운 힘을 가진 영화다.


제이콥의 가족들은 여느 가정처럼 때론 서로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끌어안는 과정을 반복한다. 가족이라는 농장을 일구는 일에 비바람이 불 때면 서로에게 우산이 되어 주기도 한다. 영화는 가족 간의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루면서 감정을 쥐어짜는 연출의 우를 범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표정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카메라가 역할을 다할 뿐이다. 차분하고 세심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연출 덕분에 이 가족의 이야기는 더 생생하게 와 닿는다.


이야기의 힘만큼이나 이 영화는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한다. 아칸소의 들판을 유영하듯 지나가는 카메라는 마치 그곳을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시의적절한 딥 포커스와 핸드헬드의 촬영법이 인상적이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아칸소주의 풍광과 그리고 함께 흐르는 음악은 이 영화를 더욱 볼만하게 하고 있다. 이는 분명 정서적인 격앙과 감정적인 고양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중에 영상미와 좋은 음악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영화 <미나리>는 다소 식상하고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식물 미나리로 상징되고 함축되고 은유되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살짝 노골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큼 이 영화의 주제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도 없다. 그리고 이 영화는 좋은 연출과 좋은 연기, 좋은 촬영과 좋은 음악, 영화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들이 수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결국 이 보편적인 이야기는 보편적이어서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된다. <미나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인 가족뿐만 아니라 낯선 곳에서 정착해 생활하는 전 세계 모든 이민자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할 때 했던 유명한 수상 소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이 말이 정이삭 감독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그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평범하고도 이렇게나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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