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나의 쓸모와 가치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실은 꽤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가치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 나은, 그러니까 방송에 나오는 저 유명한 사람들처럼 누가 봐도 영향력 있어 보이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꼭 그렇게까지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어떻게 하면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 스스로 나의 쓸모에 대해 느낄 수 있을까.
참 슬프게도 나는 그런 대단한(혹은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나의 지위와 직업은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귀감이 되지 못한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도 못해 다른 사람을 위한 베풂에 항상 인색하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할 만큼 희생정신이 투철하지도 못하다. 언변이 좋거나 리더십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누군가의 마음을 감화시킬만한 재능도 없다. 내가 가진 것으로는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들 앞에서 약해진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확실히 자신 있는 게 한 가지 있다면 바로 '들어주기'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하고 대화할 때 나는 항상 청자의 위치였는데 결코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나는 그냥 듣는다. 그저 들을 뿐이다. 이래라저래라 충고나 조언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만나자마자 씩씩대며 속상하고 억울했던 일을 털어놓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오죽 답답했으면 나한테 와서 이럴까'라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듣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도 계속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더라. 이제는 마냥 듣는 것을 넘어 갖가지 기술이 동원된다. 중간중간 적절한 리액션과 추임새도 넣어주고, 이야기가 산으로 갈 땐 슬쩍 화제 전환도 해주고, 화자의 감정에 호응하는 맞장구도 곁들인다. 내가 특출나게 잘하는 건 없지만 그래도 내 사람들에게 있어 대나무 숲 역할만은 톡톡히 하고 있던 셈이었다.
그런데 이 '듣기' 경험에 묘한 매력이 있다. 내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들은 다 털어놓은 후에는 한결 표정이 밝아진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은 고맙다고 직접 이야기도 하고, 그냥 무언의 눈빛만 보내기도 한다. 때로는 맛있는 밥도 사주고 더러는 진짜 무언가 유형의 선물을 주기도 한다. 나는 그저 귀만 열어놓고 있었을 뿐인데 그 단순한 행위가 도리어 나에게도 기쁨이 된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발견한다. 나의 쓸모와 가치를.
누군가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한 누군가가 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고민상담을 내 자존감 회복의 기회로 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쏟아놓고 풀어냈던 그 말들과 시간들이 내게도 큰 위로가 된 것이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그렇게라도 내가 좋은 영향력의 사람이 된다면 나에겐 그만한 즐거움이 또 없을 듯싶다.
생각해보면 눈에 띄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지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는 주어진 달란트가 있고, 그 뜻은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가능성과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