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대로, 흘러가는 대로

by 박상환

몇 년 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기 전, 친하게 지냈던 동료이자 동생인 놈과 술 한잔 하게 됐다. 그 친구 포함 같은 팀에서 형제같이 지내던 4~5명이 모인 자리였다. 나름 비공식적인 송별회 자리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쯤 한 친구가 내게 말하길 "나는 형이 다른 회사로 가더라도 끝까지 연락하고 형, 동생으로 지낼 거야. 진짜 여기 있는 사람들 끝까지 가자. ok?!"


벌써 5년이 넘은 일이다. 지금은 끝까지 가자 외쳤던 그 친구 포함 모임에 있던 그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술잔에 담았던 맹세는 세월의 바람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 친구들과는 퇴사 후 딱 한번 술자리를 가졌을 뿐이다. 새로운 직장에 막 적응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마저도 4년이 훌쩍 지났다. 지금은 뭐하고 사는지, 아직도 그 회사를 다니고들 있는 건지 근황을 알 수가 없다. sns를 활발히 하는 친구들도 아니었던 터라 더더욱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연락을 하면 되지, 연락을 해서 만나면 되지"라고 얘기하겠지만 마음괴는 다르게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함께 일할 땐 누구보다 친한 사이였지만, 지금은 구태여 만남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들이 미워지거나 싫어진 건 아니다. 지금도 그 친구들이 궁금하고 가끔 보고 싶기도 하다.


서로가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이가 멀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저 세월이 빠르게 흘러갔을 뿐이다. 서로가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어떤 한 사람의 책임이고 잘못일까. 아니, 그저 각자의 현재에 충실할 뿐이다. 생활의 바다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강을 돌아볼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 '어쩔 수 없음'에 마음이 많이 힘들기도 했다. 절친했던 사람들이 연락이 없으면 내심 서운해하며 그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반대로 내가 그 사람들한테 연락을 못하면 괜히 마음의 빚을 지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이건 그냥 세월의 흐름과 삶의 연속이다. 우리가 서로 멀어지는 것, 아니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 이것은 그냥 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듯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의 악한 의도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만날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이나 동호회 같은 모임들까지. 한 사람의 인생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통과한다. 학창 시절의 인연들은 성장기를 함께 보냈다는 정서적 유대감으로 그 인연이 평생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삶의 흐름 속에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별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좋은 인연은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 필요에 의해 모였지만 가족같이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아쉽게도 이러한 모임들은 필요가 바뀌고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와해되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절친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바다로 뿔뿔이 흩어진다. 거쳐왔던 모임들이 많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그 인연들을 품고 가려했지만,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이건 점점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런 현실에 굉장히 마음이 아팠었는데 앞서 얘기했듯이 서운함과 미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테가 더 늘어난 지금은 그것이 곧 인생의 자연스러움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리운 사람은 그리운 대로, 흘러가는 인연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지혜로운 내려놓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이후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멀어지는 것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생각을 바꾸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서로 미워하지만 않는다면, 그리운 마음만으로도 관계는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인연은 나가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하나보다. 5년 전 함께 했던 동료들은 없지만, 새롭게 옮긴 회사에서 그만큼 소중한 인연을 또 만났다. 이직한지도 벌써 4년째. 이제는 서로의 집안 사정까지 공유하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만약 내가 또다시 이직을 하게 된다면 지금의 동료들과는 연락을 안 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flow 아니겠나. 또 다른 인연이 팔 벌려 기다리고 있겠지.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퇴사한 사람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 직장 동료들에게 만나자고 한다면, 이전 동료들은 '아니 퇴사한다고 할 땐 언제고 왜 이렇게 자주 찾아와, 하는 일이 잘 안 풀리나 보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지나간 인연들에게는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놔두고 그냥 현재의 인연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서로 서운해하거나 미안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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