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역전을 해야만 의미가 있을까

by 박상환

9회 말 2 아웃 2사 만루. 1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이다. 투수의 손에서 공은 떠났고 방망이는 힘차게 돌았다. 그라운드 위를 굴러가는 공. 이 경기의 승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짜릿한 역전승으로 끝날 것인가. 아쉬운 패배로 기록될 것인가.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이 '역전'이란 말과 개념은 많이 사용된다. 많은 사람들.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데, 이건 단순히 성실히 일해서 얻는 부만 누리겠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극적인 드라마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매주마다 로또를 사고, 주식과 비트코인에 매달리고, 갭 투자를 노리고, 아니면 유튜브 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글을 쓰는 행위에도 어느 정도는 그런 욕심이 들어가 있다. 유명 작가가 돼서 수억 원의 인세가 내 통장에 꽂히는 꿈. 인생역전의 꿈이란 각기 모양은 달라도 모든 사람들의 판타지인 것이다.


그런데, 인생은 스포츠 경기와는 다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변수들은 무궁무진하다. 한마디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공을 때려서 안타가 되냐 아웃이 되냐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확률과 변수의 양은 상상 이상이고, 어떻게든 그 확률을 맞춰보려 애써보지만 그 모든 예측과 바람은 빗나가는 일이 더 많다.


좀 더 툭 까놓고 말해볼까. 우리가 인생에서 '역전'을 할 확률이 솔직히 얘기해서 얼마나 될까. 희망과 긍정을 덜어내고 가능성에 대해서만 얘기해보자.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겠지만, 아마도 꿈은 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바라는 드라마틱한 장면은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 이란 관용적 표현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평범한 소시민의 자리에서 평생 못 벗어날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만년 하위권 팀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힘을 내라 한화 이글스여...) 물론 희박한 확률을 뚫고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의 일이 나에게 똑같이 일어나란 법은 없다.(물론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런데 인생이란 게 꼭 그래야 지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 역전을 하면 부러운 마음이야 당연하겠지만, 역전을 못한다고 한들 뭐 어떻단 말인가. 막말로 평생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간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도 엄연한 풀이다. 잡초가 누구나 좋아하는 꽃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잡초의 생명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인생도 의미가 있다. 산다는 것 자체로서 우리는 우리만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아닐까. 수억 원의 자산이 없어도, 남들이 주목하는 삶이 아니어도 우리의 삶은 가치가 있다. 우리를 둘러싼 그 보통스러운 배경들에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평범한 삶의 의미가 꼭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인생역전을 할 절호의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잡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도 있고, 어쩌면 그 기회조차 쉽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 탓, 나라 탓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의 현실이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희망이란 게 꼭 부와 명예를 얻는 것에만 있지는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는 없다. 한 치 앞 아니 반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끝내 역전을 할 수도 아니면 역전을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역전 까짓 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냥 나대로 열심히 사는 수밖에. 어차피 인생에 있어 정해진 승자나 패자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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