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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Jul 13. 2021

<블랙 위도우>

만남과 작별을 한데 아우르다

참 오래 기다렸다. 블랙 위도우 캐릭터가 처음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한 이후 마블 팬들은 줄곧 이 여성 히어로의 솔로 무비를 기다려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이 결정되었고, 코로나로 인해 원래 개봉 예정일보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팬들과 만날 수 있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든 기다리던 작품이 우리 앞에 도착을 했다. 블랙 위도우 캐릭터가 <아이언맨 2>에 맨 처음 등장했으니 11년 만에 드디어 그녀의 단독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약) 스포 주의*


영화 <블랙 위도우>는 MCU 세계관에서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사이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히어로들을 규제하기 위한 소코비아 협정으로 이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는 현재 정부의 감시를 피해 은신 도피 중이다. 영화는 이러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솔로 히어로 무비의 기본 뼈대를 구성하기 위해 팀원 아무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는 상황으로 세팅한 느낌이다. 이는 곧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개인의 이야기를 좀 더 집중적으로 할 채비를 마친 셈이다. 영화는 그녀가 어떻게 '위도우'가 되었는지에 대한 과거사를 밝히고, 그 과거와 이별하며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전개 양상을 띄고 있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지난 세월을 어벤저스의 일원으로 그들과 함께 여러 일들을 겪었다. 마치 그들을 가족처럼 느꼈던 나타샤-블랙 위도우였다. 솔로 무비에서의 나타샤는 히어로 가족이 아닌 인간 가족(?)과 함께한다. (물론 그들도 진짜 혈육이 아니라는 건 함정) 그러다 보니 영화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구구절절해진다. 기존의 MCU 세계관에 속해 있던 다른 솔로 무비들이 적어도 2편 이상의 시리즈를 가지고 갔던 것에 비하면, 이 <블랙 위도우>는 단 한편에 모든 것을 담아내야만 했다. 이 영화가 <어벤저스: 엔드게임> 이후의 작품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영화 <블랙 위도우>는 블랙 위도우의 탄생 배경, 나타샤 로마노프의 성장과 가정사, 그들 가족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그녀의 죽음까지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동시에 빌런과의 대결도 멋지게 그려야 하는 녹록지 않은 숙제를 떠안은 것이었다.


이 영화는 확실히 MCU 세계관에 속해 있지만, 속해있지 않은 것 같은 미묘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이런 특징은 두 가지 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1. 마블의 세계관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진입장벽이 꽤나 낮다는 점. 2. 하지만 소위 마블'덕후'들에게는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 영화 <블랙 위도우>는 단독 히어로물로서는 꽤나 준수한 작품이겠지만, 이 영화의 '소속'을 생각한다면 다소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이 아쉬움은 어쩌면 '블랙 위도우'의 단독 작품이 너무 늦게 우리에게 도착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제작 시기와 개봉 시기가 필연적으로 '블랙 위도우'의 개인 서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으며, 이는 곧 MCU의 색깔을 흐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블랙 위도우'가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그냥 '저스트 휴먼'이다 보니 액션의 시퀀스도 기존 마블 작품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 물론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장면들은 있다. 내로라하는 첩보영화(제이슨 본, 미션 임파서블)들을 오마주하고 벤치마킹한 장면들은 그 짜임새가 꽤 훌륭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의 카타르시스는 거기까지다. 더군다나 극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할 빌런과의 대결 그 마지막이 매우 심심하게 그려지고 있고, 문제 해결 과정도 조금은 유치하고 뜬금없기까지 하다.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매력이 반감되는 지점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블랙 위도우>의 장점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페미니즘'이다. 이 영화를 전적으로 끌고 가는 캐릭터는 모두 여성들이다. 여성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니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주인공 '나타샤 로마노프'를 비롯 그녀의 자매 '옐레나' 엄마 '멜리나'가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중심축이다. 이 영화에서 남자는 악역과 코믹하게 그려지는 조력자 캐릭터뿐이다. 여성들이 문제 해결에 전면에 나서며, 현란한 맨몸액션과 곡예 비행등의 고난도 액션을 소화하는 것은 온전히 여성들의 몫이다. 남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을 구원해 주는 것은 이 영화의 여성 캐릭터 들이다. 영화 <블랙 위도우>는 '정치적 올바름'의 강박에 빠지지 않으면서 장르 안에 페미니즘을 녹여낸 신통한 작법을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히어로 영화라 할 수 있다.


또한,  액션 영화 장르 안에서 플로렌스 퓨 배우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이 영화의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겠다.



<블랙 위도우>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대치에는 못 미칠지언정 이 영화는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 10년 넘게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를 보내는데 이만한 작별인사가 없을 듯싶다. 나타샤 로마노프란 사람이 가족을 만나고, 그녀가 블랙 위도우란 옷을 입고, 또 블랙 위도우가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그 특별히 애정 어린 서사가 이 영화에는 분명히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앞에 온 것을 MCU의 팬이라면 다들 고맙다고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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