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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Nov 10. 2019

<신의 한 수: 귀수편>

껍데기는 그럴듯하다.

바둑은 흑과 백의 돌을 번갈아 두며 끝내 차지한 집의 많고 적음으로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다. 대중오락인 동시에 하나의 스포츠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업(業) 이 되기도 한다. 높은 수준의 두뇌싸움이 필요하고, 한 판을 마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주위에 바둑을 두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게임의 발달도 한몫했을 것이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던 기원도 찾기가 힘들어졌다. 이제는 어르신들의 전유물이 돼버린 것만 같다. 이러다가 바둑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신의 한 수>는 이런 바둑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바둑을 소재로만 썼을 뿐 사실 바둑이 아니어도 상관없을만한 전형적인 액션 복수극이다. <신의 한 수>는 바둑이란 놀이를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려 하기보단 주인공의 복수의 쾌감을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014년에 개봉했었던 <신의 한 수> 1편은 이 복수의 쾌감이 나름 유효하게 전달되고 있다. 주인공인 태석(정우성) 이 내기 바둑판에서 형을 잃고 시련-> 각성-> 복수에 이르는 과정을 꽤 볼만하게 담아내고 있다. 뻔하디 뻔한 영화였지만 액션 시퀀스 하나만큼은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타격감이었다.



원조 몸짱 권상우가 연기하는 액션은 어떨까. <신의 한 수: 귀수편> 도 액션 하나만큼은 보기 좋게 잘 만들어졌다. 다만 액션과 스타일에 온 힘을 쏟다 보니 영화의 다른 부분의 완성도는 민망할 정도이다. 보여주는 재미는 있지만 보여주기 위한 과정은 형편이 없다. <신의 한 수: 귀수편> 은 껍데기만 그럴듯할 뿐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개연성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액션 장르 영화에서 개연성은 사치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미니멈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이나 히어로들은 시련 -> 각성 -> 복수(승리)의 서사를 따른다.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도 승리하고 천하무적 불사신이 되는 것은 2번째 단계인 각성에 달려있다. 이 각성의 단계가 어떻게 그려지는지에 따라 주인공의 불사(不死)에 당위성이 부여된다. 하지만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이 각성의 단계가 대폭 생략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멋진 액션이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전작인 <신의 한 수> 1편에서 정우성이 어떻게 싸움고수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잠깐이라도 보여주는데, 이게 <신의 한 수> 1편과 <신의 한 수: 귀수편> 과의 결정적 차이다. 게다가 바둑판의 승부를 뒤집는 것도 몇 번의 과거 회상으로 퉁을 치니 보는 사람은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



캐릭터의 낭비도 심각하다.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다. 물론 연기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놀다 보니,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이다. 개인 기량을 뽐낼 뿐 영화적으로 유의미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스타급으로 선수단을 구성했지만 정작 실제 경기에서는 패배만 하는 모습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기 마련인데, 꿰지도 못하니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했을까. 참으로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모으기에도 쉽지 않았을 텐데 결과물이 참 아쉽기 그지없다. 다음엔 더 좋은 작품에서 이들의 연기 앙상블을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타짜> 이후 많은 도박 소재의 영화들이 알게 모르게 <타짜>를 흉내 내고 있다. 이 영화 역시 <타짜>의 외피를 그대로 본뜨고 있는데 정말 답답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신의 한 수> 1편이 바둑을 소재로 액션 영화로서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이번 <신의 한 수: 귀수편> 은 1편에서 액션만 빌려온 또 하나의 <타짜> 아류작인 것이다. <타짜> 도 그러했지만 왜 우리나라 시리즈 영화들은 균일한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할까. 자못 앞으로 이 시리즈의 향방이 궁금해진다.



바둑의 승리 공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집을 많이 만드는 것. 하지만 승리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게 바둑의 매력이다. <신의 한 수: 귀수편> 은 그 길을 너무 쉽고도 안이하게 그려버린다. <신의 한 수> 1편도 그랬지만, 바둑이 소재인 영화에 바둑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차피 치고받고 싸울걸 굳이 바둑이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다음 시리즈가 나온다면 바둑에 대한 그 치열한 승부에 대한 묘사가 좀 더 많이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계속 액션에 맞추고 싶다면 답은 하나다.


차라리 '바둑기사 존 윅'으로 시리즈를 이어가자.



ps: 쿠키영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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