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hai park Nov 24. 2019

<블랙머니>

투박하지만 명료한 전달

대한민국의 경제는 1997년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국가적인 경제 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로 거의 모든 면에서 이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뼈를 깎는 긴축재정으로 구제금융은 벗어났지만 그 이후의 결과는 여전히 국민들의 몫이다. 비정규직의 만연과 양극화 현상. 이로 인한 사회적 우울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또한 외국자본의 본격적인 침투가 IMF 이후 시작이 되었다. 여러 개의 굵직한 기업들이 외국의 기업체에 인수 합병되었다.


영화 <블랙머니>는 IMF 이후에 일어난 실제 금융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발단은 결코 IMF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KEB하나은행이 되어버린 한국외환은행은 1967년 외환거래와 무역금융을 위한 특수은행으로 설립되었다. 1989년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일반 시중은행으로 바뀌었다. 국내 최초로 북한에 출장소를 개점하기도 했던 외환은행도 IMF라는 큰 파도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IMF 경제위기 때 독일의 코메르츠방크에 지원을 받으며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2003년에 미국의 론스타라는 기업이 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영화 <블랙머니>는 '론스타 게이트'라고도 불리는 한국외환은행의 인수와 매각에 관한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 사회고발 영화를 만들어왔던 정지영 감독은 7년 만에 경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경제에 관한 영화라서 본인 스스로도 공부를 많이 했다고 인터뷰에서도 밝혔다. 그러한 노력 때문이었을까. 이 영화는 자칫 어려울 수도 있는 경제 이야기를 아주 쉽게 전달하고 있다. 실제 사건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하다고 해도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은 전혀 어렵지가 않다. 다소 생소한 경제용어들이 등장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몰라도 될 정도로 영화는 아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완전 예상 밖이었다. 숫자와 그래프에 약한 나는 이제껏 경제에 관한 영화를 볼 때 그 이야기를 100% 이해하고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블랙머니> 만큼은 100% 다 이해한 채로 영화관을 나올 수 있었다. 속이 시원했다. 쾌변 후 화장실을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경제에 관한 문외한이어도 사건에 대한 진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매우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정지영 감독과 제작진의 의도와 노력이 엿보인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 이러한 강사가 있다면 아마도 그는 수험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1타 강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하려면 많은 사람이 봐야 될 텐데 영화적으로 완성도나 재미가 어느 정도는 담보가 되어야 하겠다.



영화 <블랙머니>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투박하다. 시골밥상 같은 그런 긍정적인 느낌의 투박함이 아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그냥 못 만들었다는 얘기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굉장히 평면적인 구성으로 일관한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설정과 캐릭터들은 볼 때마다 상당한 피로감을 준다. 한국영화의 전형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은 실로 압권이다. 실체 없는 말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때깔' 은 요즘에 나온 영화가 아닌 듯하다. 매끄럽지 못하게 전개되는 이 영화는 클리셰들을 남발함으로써 결국 영화적으로 부도 위기에 빠지고 만다.


이 영화는 사건의 진상을 전달해주고 해설하는데 충실할 뿐이다.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무조건 어렵고 깊이 있게 만든다고 다 좋은 영화는 아닐 것이다. 때로는 쉽게 얘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영화광이나 씨네필은 아닐 테니 말이다. 어쨌든 <블랙머니> 우리가  알아야  사건의 진상을 최대한 쉽고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랩으로 치자면 플로우는 엉망이어도 딜리버리는 확실한 셈이다. 투박하지만 맛있는 그런 시골밥상은 아니지만, 어쨌든 맛은 없어도 만든 이의 노력은 느껴지게 만드는 결과물이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론스타는 한국외환은행 매각 지연에 따른 손실로 한국 정부에 소송을 하게 된다. 한국 정부의 첫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에 있다. 워낙에 규모가 큰 사안이라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에 한국 정부가 패소할 경우 막대한 비용을 론스타에게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 국민의 세금이다.


영화 한 편이 재판의 결과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미디어는 계속 그런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건과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사건과 다른 내용들을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는 말아야 한다.


역사와 사건에 대해 수년간의 추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상업영화로 좀 더 쉽게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사람도 있다. 한국 영화계의 노감독인 정지영 감독은 후자의 전달방법을 택했다.


세련된 솜씨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게 얘기하고자 했던 노감독의 노력에 지지를 보낸다.



ps: 실화 소재인 만큼 영화 관람 전 해당 사건에 대한 예습이나 검색을 권유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의 한 수: 귀수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