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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Nov 30. 2019

<겨울왕국 2>

반가움도 잠시, 뜬 구름 잡는 이야기뿐

우리는 몇 년 전의 '얼음 돌풍'을 기억한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렛 잇고'를 외치던 2014년의 겨울.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그 해 겨울 박스오피스를 그들만의 왕국으로 만들어버렸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긴 흥행 성적이 이를 말해준다. 전 세계적으로는 1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으니 정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겨울왕국> 이 나온 이후 매년 겨울마다 이들에 대한 추억들이 소환됐다. 영화 속의 노래와 춤 , 명장면들이 sns를 통해 수없이 플레이되고 공유되었다. 이제 겨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에 <겨울왕국> 이 있었다. 몇몇의 캐릭터들은 덕후들을 잉태하였고, 다수의 서브컬처가 만들어졌다. '엘사 드레스'가 꼬마 숙녀들의 워너비 아이템이라는 것도 그리 놀랄일 만은 아니다. 엘사뿐만 아니라 안나, 올라프, 크리스토프 거의 모든 캐릭터가 매력이 넘쳐서 이 영화를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다림이 더 오래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아렌델 왕국의 두 자매 엘사와 안나. 귀여운 올라프와 든든한 조력자인 크리스토프와 스벤까지. 캐릭터의 매력이야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다. 이들이 다시 돌아온다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가 있겠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다 비슷했던 모양이다. <겨울왕국 2>는 이미 개봉 전부터 예매율 1위를 달렸고, 개봉한 지 이제 10일 정도 된 지금 벌써 700만 명을 넘어섰다. 오래도록 기다린 반가움은 숫자로 바로 증명되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엘사와 안나 올라프, 크리스토프가 등장할 때마다 씨-익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제 거의 한가족이 된 그들은 매우 행복해 보였고, 아렌델 왕국도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엘사는 아니었다. 그래 이 시리즈는 결국 엘사의 이야기였지. <겨울왕국 2> 도 엘사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겨울왕국 1>에서 엘사는 그녀가 가진 힘을 거부하다가 결국 받아들임으로써 해피엔딩을 맺게 되는데, <겨울왕국 2>에서는 그 힘에 대한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중간중간 사랑과 우정 그리고 여러 소중한 가치관에 대한 설교질도 빼놓지 않는다.


엘사의 힘의 근원을 찾아가는 힌트는 그녀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들려주었던 한 이야기 속에 있다. 숲, 강, 불, 바람, 돌 같은 샤머니즘 가득한 그 이야기는 꽤나 허무맹랑하다. 고대국가의 건국설화 같은 그 이야기가 <겨울왕국 2>의 주된 이야기라면 애당초 잘못된 선택이다. 이건 세계관의 확장이 아니다. 세계관을 잘못 설정한 것이다. 1편에서 내면적으로 성장한 엘사이기에 2편에선 필연적으로 외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고조선, 삼국의 왕들이 어떻게 탄생되었나 하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것이 결국 엘사를 신격화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던가. 그렇다면 할 말 없다. 그러한 목적은 제대로 달성되었으니까.


신이나 다름없었던 엘사는 무서울 것이 없다. 그녀 앞에 닥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너무나 간단하게 위기를 탈출하는 엘사는 이제 더 이상 공주가 아니다. 여전사요 히어로다. 그리고 결국 신이 된다. 무적 엘사에게도 딱 한번 위기가 찾아오는데 그때 안나의 결정적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 부분이 결국 <겨울왕국 2>  서사의 큰 구멍을 만들어 버린다. 빈약하고 알맹이 없는 서사는 오래 기다린 반가움도 금세 잊어버리게 만든다.


메시지에 대한 압박 때문일까. 이 영화는 심각할 정도로 교훈적이다. 지나친 훈계질은 영화를 온전히 즐기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극장에 오는 것이 즐기러 오는 것이지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하긴 아이들도 보러 오는 영화라면 이 정도의 훈계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한들 단군신화 같은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이해가 안 된다.


 


<Let it go>,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Love is an open door> 같은 명곡들을 배출했던 1편과 달리 확 귀를 잡아 끄는 노래도 마땅히 없다. 타이틀곡 격인 <Into the unknown> 이 그나마 들을만한데 <Let it go> 같은 임팩트는 없다. <Let it go>가 워낙에 명곡이었으니 이 부분은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2편에서는 노래가 아주 잘못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1편에서 노래들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도구였다. 점차 고조되는 감정들을 한데 끌어모아서 노래로써 팡! 터뜨리는 결정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었다. 하지만 2편에서 노래들은 그저 순서대로 나열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노래가 나오는 순간만큼은 눈요기가 된다. 노래에 맞게끔 제때에 터지는 시각효과들은 과연 디즈니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1편에 비해 나아진 점은 비주얼 하나뿐이다. 노래가 더 다가오지 못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1편에서 등장인물들은 노래를 부르며 감정표현을 했다면, 2편에서는 화려한 배경을 뒤로하고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는 듯한 기분이다.


비주얼은 가히 압도적이다.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디테일과 효과들은 그나마 극장에 가서 볼 이유를 주고 있다. 이 기술력은 빈약한 서사를 메우는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래도 졸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영화는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대충 알아들었지? 그냥 앉아서 노래나 듣고 그래픽이나 감상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반가웠다. 그래도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실망감이 좀 크다. 기대치만큼 보답해 주는 것은 올라프뿐이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다. 자기의 본적이 궁금한 여왕, 그런 언니를 지키려는 사명감 넘치는 동생, 이 와중에 프러포즈각만 재고 있는 남자 친구. 여러 이야기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이것도 숲의 저주일까. 1편의 그늘일까.




이래저래 실망감만 가득한 5년 만의 만남이었다. 1편에 비해서 좀 못한다 수준이 아니다. 그냥 따로 떨어트려 놓고 봐도 평균을 밑도는 완성도이다. 그 부분이 참 마음이 아프다. <겨울왕국 1> 은 정말 재밌고 사랑스러웠는데, 이 시리즈에 대한 나의 애정도 딱 여기까지 인 듯싶다.


<겨울왕국 2>는 이미 박스오피스에서 순항 중이다. 이렇게 된 이상 3편도 제작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과연 신이 된 엘사는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그리고 디즈니는 어떤 뻔함과 어떤 놀라움을 보여줄까.



ps: 1편을 안 보고 가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올라프가 다 설명해 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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