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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Dec 05. 2019

<아이리시맨>

마지막이 진짜다.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 영화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약 40편의 필모그래피를 쌓아 올린 살아있는 전설이다. 마틴 스콜세지 하면 흔히 갱스터 영화들을 떠올릴 테지만, 장르를 불문하고 양질의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온 거장 중의 거장이다. 영화의 변화를 몸소 통과한 역사의 산 증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번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들을 찾아왔다. 전통적인 극장 개봉이 아닌 OTT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신작 소식을 알렸다. 마틴 스콜세지 하면 떠오르는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하비 케이텔 등 오랜 친구들이 오랜만에 그와 함께 했다. 또 한 명의 명배우 알 파치노도 함께 하였는데, 믿기 어렵겠지만 알 파치노와 마틴 스콜세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리시맨> 은 실제 사건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실종된 지 4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60~70년대에 활동했던 유명한 노동운동가 지미 호파(알 파치노). 호파의 최측근이자 경호원인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니로). 그리고 그 둘의 다리가 되어주는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 영화 <아이리시맨> 은 이  세 명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시작은 한 병원에서 휠체어에 앉아있는 프랭크 시런의 회고로 시작된다. 카메라가 비추는 병원의 모습은 나이 많은 노인들만 가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노인전문요양원 같은 모습이다. 처음엔 몰랐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아주 의미심장한 도입 장면이다.


<아이리시맨> 은 프랭크 시런의 내레이션을 화자 삼아 그의 삶과 그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다. 사건들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특정한 감정을 강요하진 않는다. 뼈 있는 메시지나 철학적인 주제를 전달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야기할 뿐이고 이 이야기는 배우들의 명연기로 빛을 발한다. 우리가 보통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이야기가 그냥 흐릿한 이미지로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아이리시맨> 은 프랭크 시런의 회고를 아주 정확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스토리 텔링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담담한 어조는 지미 호파의 죽음 이후 급변한다. 영화에서는 죽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실종사건인 이 사건을 두고 그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경찰과 법정의 부름을 받는다. 프랭크 시런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부자, 권력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너나 할 것 없이 죽는다. 프랭크 시런은 홀로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본다. 조직과 의리에 헌신했던 남자의 삶은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지 오래다. 노구를 이끌고 어렵게 찾아간 딸은 그를 보자마자 피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폭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먼 훗날 그에게 다시 찾아왔다.


영화 후반부의 프랭크 시런은 과거를 기억하며 후회에 빠진다. 한때는 권력의 최측근이었던 그는 이제는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못 가누는 늙어빠진 껍데기일 뿐이다. 시간은 이미 강을 건너갔고 돌아오지 않는다. 후회해도 늦었다는 것을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있을까. 병실 문틈으로 보이는 프랭크 시런의 마지막 눈빛이면 충분하다.


이 영화가 더 특별한 것은 이러한 인생무상의 메시지가 70대의 노장 감독과 배우들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것이다. 영화의 소재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쩌면 <아이리시맨> 은 그들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제는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거장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했던 젊은 날을 뒤로하고 인생의 엔드라인에 다가갔을 때 그때의 그 감정들. 후회, 미련, 아쉬움, 외로움.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안 되는 감정이다. 어떤 느낌일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랭크 시런의 표정과 눈빛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프랭크 시런을 연기하는 로버트 드니로의 표정은 연기가 아니다. 요즘 말로 '찐'이다.



3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조금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하지만 긴 러닝타임 중 쓸모없는 장면은 일절 없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30분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데, 이 절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앞에 3시간은 필수적이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딱 잘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노년의 그 감정들이 상상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아주 잘 만들고 재밌는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가 주는 감정을 정확히 캐치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더욱 값진 것 같다. 알 수 없는 사람도 알게끔 만드는 것. 영화가 주는 간접경험의 힘이 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배어있다.

 



<아이리시맨> 은 영화의 마지막을 통해 마지막에 대해 얘기하는 마지막 생존자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지막 30분을 위해 3시간 동안의 여정이 있었듯,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언젠가 올 우리의 마지막. 그때에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 날이 오면 우리는 어떤 눈빛을 머금고 있을까.



ps: 영화가 길고 상영관도 많지 않습니다. 맘 편하게 넷플릭스로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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