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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Dec 14. 2019

<나이브스 아웃>

설명충이어도 괜찮아

여기 한 명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있다. 명성만큼이나 쌓아놓은 부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죽게 되고, 수사를 위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추리 영화 <나이브스 아웃> 은 약간은 뻔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장르의 특성상 멀티캐스팅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사람을 용의자로 설정하고 이야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추리소설 & 영화의 공식이다.




세계적인 작가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자녀들. 그리고 아버지의 간병인. 이들을 취조하고 인터뷰하는 경찰과 탐정. 이 인터뷰와 취조가 영화 전반부의 긴장감을 구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 (다니엘 크레이그)과 가족들 간의 이 면담 아닌 면담을 통해 자녀들과 아버지의 관계. 형제들 간의 관계들을 보여줌으로써 초반부에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한다. 앉아서 서로 대화만 하는 이 지루한 장면은 훌륭한 교차편집으로 집중력을 잃지 않게 만든다. 초반에 쌓아놓은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탄탄한 각본이 인상적이다.


잘 유지되던 긴장감은 종반부에 사건이 해결되는 시점에서 급격히 빠져버리는데, 브누아 블랑이 범인을 지목하면서 하는 장황한 설명은 애써 묶어놓은 끈을 너무 허무하게 풀어버리고 만다. 브누아 블랑은 시작부터 끝까지 말로서 모든 걸 해결하는데, 그가 그 정도로 뛰어난 탐정이라는 단서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공감하기가 어렵다. 육탄전과 추격전을 아끼지 않았던 <셜록홈스> 시리즈와는 많이 다른 추리물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결국 마지막에 가서 사건의 시종일관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게 추리 영화의 공식이자 미덕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모든 추리 영화의 탐정들은 하나같이 다 설명충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이브스 아웃> 은 장르의 클리셰들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전통을 따르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이 영화는 장르영화로써 온전한 재미를 보장한다. 영화의 외양이나 내면 모두 매우 클래식하다. 이 영화가 2019년 개봉작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은, 인스타그램이나 인플루언서 같은 단어가 등장할 때다. 또한 좌파니 우파니 하는 정치적 단어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체류 문제도 언급이 되고 있는데 살짝 양념을 친 정도에 불과하다.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몇몇 정치적 코드 때문에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가 승자가 된다고 그것이 어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성취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그만큼 정치적인 사안을 깊이 있게 다루지도 않는다. 몇몇의 리뷰어들이 정치극이라고 얘기하지만 이 영화는 정치극이 아니다. 글쎄, 연출자는 추리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정치적인 내용까지 다 껴안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정치를 껴안다 말고 있다. 정치 코스프레가 사실 영화를 진행하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얘기를 하는 꼴이다.



화려한 출연진은 각자 제 몫을 하고 있다. 그래도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건 크리스 에반스다. 연기를 잘했다기보다는 기존의 캡틴 아메리카의 이미지가 깊게 박혀 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이미지 탈피에 성공한 듯하다. 미국의 영웅에서 최악의 쓰레기로 변신을 시도했는데 나름 그 변신이 성공적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이 추리극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인 셈이다. 다른 연기자들도 과연 베테랑다운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멀티캐스팅 영화에서는 그만큼 배역 간의 밸런스가 필수적인데  <나이브스 아웃> 은 그 어려운 걸 해내고 만다.




<나이브스 아웃> 에게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는 이미 하나의 장르영화로서  재미가 상당하다. 이러한 정통 오리지널 진짜배기 리얼 추리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다소 설명충 같은 사건 해결 방식이 맘에 안 들지만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자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이브스 아웃> 은 장르의 전통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며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의외로 위트 넘치는 장면들도 많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당연히 원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순수 창작물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Knives out' 은 번역하자면 '칼을 꺼내다' '칼을 꺼내 공격하다'라는 뜻이다. 동시에 숙어로 '누군가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다'와 같은 뜻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유산을 가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이 가족의 모습에 'Knives out'이라는 제목이 찰떡같다.



ps: 위 사진에 두 배우는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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