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테이큰'
참전 용사였던 눈먼 노인이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집안이라는 한정된 공간, 어둠으로 인한 감각의 상실이 서스펜스를 극대화시켰다. 집에 불이 꺼지는 순간 침입자들은 되려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본래 맹인이었던 노인은 시력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침입자들을 처단했다. 자신의 집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불이 꺼진 집에서 침입자들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노인에게는 눈에 훤했다.
2016년에 개봉했던 <맨 인 더 다크>는 '감각의 차단'으로 인한 공포를 매끈한 솜씨로 다룬 스릴러 영화였다. 불이 꺼진 집안에서 침입자가 피해자로 바뀌는 상황의 역전으로 인한 반전의 묘미도 일품이었다. <맨 인 더 다크>는 제작비 6500만 달러를 투자해 1억 5700만 달러의 총수익을 얻었다.(출처:나무 위키) 대중들의 반응, 평론가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기에 속편 제작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소리를 낼 수 없는 감각의 차단으로 인한 비슷한 영화로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떠오른다. 이 영화 또한 1편의 성공으로 속편 제작에 들어갔고 기대와 우려 속에 나온 속편도 꽤 괜찮았다. 아이디어로 승부했던 1편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한 세계관의 확장이나 캐릭터의 진회가 아주 잘 이루어졌다. <맨 인 더 다크>도 신박한 아이디어가 주효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사실 <맨 인 더 다크>는 <콰이어트 플레이스>와는 좀 다른 부분이 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괴생명체가 등장을 하고 누가 봐도 공격과 수비, 악역과 선역이 구분이 되지만(그래서 세계관 확장이 다소 용이하지만) <맨 인 더 다크>는 1편의 이야기를 봤을 때 그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 아마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집에 침입한 도둑이 악역인지, 그 도둑을 죽인 노인이 나쁜 건지 영화에서도 애써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눈먼 노인의 액션에 반해 관객의 입장에서 끝내는 노인의 생존을 바라게 되지만 여느 공포영화처럼 주인공과 악역이 뚜렷이 구분되지는 않는다. 이런 점이 1편에서는 오히려 극의 재미를 살리는 요소가 되었지만 속편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약간 장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맨 인 더 다크 2>에서 노인은 대놓고 선역으로 나온다. 딸과 함께 외딴집에서 은둔하며 지내는 노인은 다시 한번 침입자에 의해 안정된 삶을 방해받는다. 침입자들에 의해 딸이 납치당하고 그 딸을 찾기 위해 납치범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것이 <맨 인 더 다크 2>의 주요 내용이다.
속편에서 노인에게는 부성애의 무기가 하나 더 생기게 된다. 이런 식상한 설정을 들고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극 중에서 노인은 8년이나 더 나이를 먹었음에도 훨씬 더 강해진 전투력을 과시하는데 이것이 그 이유일까. 복잡하지 않은 설정으로 밀도 있는 긴장감을 보여주었던 1편이었다. 그에 비해 속편은 이야기의 곁가지를 좀 더 추가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실패하고 만다. 주인공이자 빌런인 눈먼 노인 캐릭터를 엉뚱하게 변화시키면서 서스펜스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1편에 그 공포를 대신하는 것은 애틋한 부성애라는 이름의 유통기한 지난 향수다.
그리고 이 딸을 둘러싼 무언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은데 3편을 생각하는 것인지 그냥 얼렁뚱땅하게 넘겨버린다. 중간에 등장한 아빠와 엄마라는 캐릭터는 도대체 무엇인지 개연성과 서사는 철저히 버린 꼴이다. 이야기를 확장했으면 그에 맞게 개연성도 어느 정도 확보를 해야 하지만 <맨 인 더 다크 2>는 이에 완전히 실패를 했다.
긴장감도 떨어지고, 개연성도 엉망인 영화를 메우는 것은 뜻밖의 '고어(gore)함'이다. 인물들이 죽고 또 서로 죽이고 하는 장면에서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그야말로 정말 쓸데가 없다. 이런 장면들이 결코 영화의 서스펜스를 높이거나 긴장감을 살리거나 하진 않는다. 그저 여전히 영화에 대해 갸웃거리는 걸 반복하게 할 뿐이다.
이제 이 시리즈도 끝났다 싶을 때 영화는 3편에 대한 여운을 남기고 막을 내린다. 하지만 쿠키영상이 기대가 아닌 우려와 실망이 되는 건 참 생소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