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하고도 당황스러운 결과물
제임스 완 감독은 <쏘우>와 <컨저링> 시리즈를 통해 시대를 대표하는 공포영화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분노의 질주:더 세븐>과 <아쿠아맨>으로 규모가 큰 영화도 잘 만들 수 있음을 입증했다. 영화 <말리그넌트>는 오랜만에 그가 본업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아쿠아맨>의 대성공과 이어질 영화의 속편으로 가기 전 제임스 완 감독은 그의 장기인 공포영화를 들고 온 것이다.
영화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는 <컨저링>과 <인시디어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공포영화처럼 보였다. 여전히 집에는 악령이 깃들어있고, 해결을 위해 또다시 심령술사 같은 사람이 등장하며, 점프 스케어의 클리셰가 난무하는 어쩌면 다소 뻔한 영화가 될 듯싶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또 제임스 완 감독이니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사실 우리가 영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가지는 것은 2~3분 남짓의 짧은 예고편이 전부 아니겠는가. <말리그넌트>는 예고편만 보자면 뻔하고 흔한 공포영화들처럼 보였다. '제임스 완 연출' 이란 자막을 못 봤다면 영락없이 제임스 완 영화들의 아류작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다소 이질적이긴 하다. 하드고어 한 슬래셔 무비를 연상시키는 오프닝 씬은 <컨저링>이나 <인시디어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는 여지없이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영화의 주인공 매디슨(애나벨 월리스)은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며, 이미 2번이나 유산한 상태다. 남편이 괴한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매디슨은 세 번째 아이마저 유산하게 된다. 남편이 죽는 과정은 전형적인 '귀신 들린 집'의 클리셰를 보여주고 있다. 갑자기 TV가 켜지고 냉장고 문이 열리는 등 매우 익숙한 방식으로 공포감이 조성된다. 매디슨은 얼마간의 병원 치료 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안의 이상 징후들은 여전히 우리의 가여운 주인공을 괴롭히고 있다.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공포감을 느끼는 이 전형적인 패턴은 영화의 중반부에서 한번 반전을 맞이한다. 이전의 방식과는 달리 피해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 살인마를 직접 '등장' 시킨다. 그리고 이때부터 초자연적인 심리 스릴러에서 슬래셔 무비로 장르가 바뀐다. 수위 높은 살인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상당히 하드고어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범위. 다소 급작스럽지만 장르적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유혈이 낭자한 슬래셔 무비는 이 살인마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또 한 번 경로를 바꾼다. 이때부터 이 영화는 크리쳐물이 된다. 거침없는 몸짓으로 칼을 휘두르는 살인마의 정체는 사실 사람의 형상을 한 괴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괴물은 사람의 몸에 기생하며 숙주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는 것. 결국 이전에 있었던 영화 속의 사건들은 이 괴물 때문이었다는 것.
영화의 전개는 예상을 아득히 넘어버린다. 또한 이 괴물의 정체와 탄생 배경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수용이 안 되는 부분이다. 그야말로 기발하고 아주 독창적인데 심히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말리그넌트>는 '에이 그럼 그렇지' 하는 순간 여지없이 그 기대를 무너뜨린다. 한 영화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다양한 변주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내내 보여주고 있다. 이런 부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연성과 서사에 목숨 거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영화는 최악의 영화가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컨저링>으로 시작해 <할로윈>을 거쳐 <에일리언>이 되었다가 <이블데드>의 기운도 살짝 머금은 채로 끝을 맞이한다. 영화의 마지막도 예상을 벗어나기는 마찬가지다. 제임스 완 감독은 <말리그넌트>를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공포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새로움과는 별개로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양극단으로 갈릴 것이 명확해 보인다. 모든 영화가 호불호라는 게 존재하지만 이 영화는 그 경계가 역대급으로 선명하게 나눠질 것 같다. 어쩌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평가되는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