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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Oct 04. 2021

<007 노 타임 투 다이>

캐릭터의 기개로 밀고 나가는 영화

007 시리즈는 1962년 <살인번호>를 시작으로 이번에 개봉한 <노 타임 투 다이>까지 총 25편이 나왔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시리즈가 이어져왔다니 그 사실 자체로도 놀랍다. 이 시리즈와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이 현대 영화사에 남긴 족적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영화사 최고의 프랜차이즈는 이제 또 하나의 쉼표를 찍는 중이다.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마지막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1년 반 만에 우리 앞에 찾아왔다.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영국 신사, 젠틀함, 슈트 빨, 여성편력, 첩보, 스파이 등등. 1대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가 완성한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성은 스파이의 뉴 타입을 제시했고 이후 나올 첩보 스파이 영화의 영향을 주었고 참고가 되었다. 애스턴 마틴 자동차와 오메가 시계로 그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작전중에 사용되는 최첨단 무기들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이름을 두 번 말하는 특유의 자기소개법 (본드, 제임스 본드)으로 이 캐릭터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세대를 통과하며 살아온 제임스 본드는 나이에 따라 숀 코네리부터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각자의 기억에 마음을 훔친 스파이로 기억되고 있다. 007 시리즈의 25번째 작품인 <노 타임 투 다이>는 상당 부분 이런 캐릭터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작품이다.


<노 타임 투 다이>는 이전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를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고 한다.) 피어스 브로스넌으로 처음 007을 접한, 구력이 짧은 나로서는 미처 다 발견하지 못하였다. 보드카 마티니에 대한 언급만 살짝 이해했을 뿐이다. 누군가 007 시리즈 전체를 다 보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했는데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혹시나 이 시리즈 전체를 다 본 사람이라면 <노 타임 투 다이>는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다 모른다 하더라도 이 영화가 제임스 본드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에 대한 헌사로 만들어졌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15년 동안 본드의 옷을 입었던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를 어떻게 보낼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 결과 제임스 본드의 능력치와 인간미가 한 국자나 더 첨가되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주인공 버프는 이전 시리즈보다 더 심해졌으며, 여성편력의 본드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순정남이 되었다.



확실히 조금 낯선 느낌이다. 제임스 본드의 고유한 캐릭터를 드러내고 유지하기 위한 장치들도 분명히 느껴지지만,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내가 알던 본드가 맞나 싶다. 다분히 한 배우(다니엘 크레이그)의 퇴장을 염두한 듯한 설정이다. 문제는 인물과 캐릭터와 배우에 대한 헌사에 신경을 쏟은 나머지 영화의 빈 곳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영화의 메인 플롯이 될만한 중심축이 부실하며, 개연성의 부재도 영화적 허용을 넘어버리는 수준이다. 메인 빌런인 룻시퍼 사핀(라미 말렉)의 존재감도 미약하기 그지없다. 본드와 마들렌(레아 세이두)의 로맨스도 공감이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2시간 43분의 러닝타임은 굉장히 길게만 느껴진다.


영화는 오로지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와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의 기개로 밀고 나간다. 영화의 수많은 허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개 방식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마티니는 포기할 수 없는 본드의 멋스러움과 여유, 그런 본드의 영혼을 이식한 푸른 눈의 크레이그. <노 타임 투 다이>는 전적으로 캐릭터와 배우에 대한 이야기다.



'007 no time to die' 영화의 제목처럼 007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반세기를 이어온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이 살짝 불만이기도 하다. 시리즈 처음으로 본드의 죽음을 택한 이 영화. 다니엘 크레이그를 위한 선택으로서는 최상이었지만, 007 시리즈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고 걱정되는 마음도 있다. 누가 7대 제임스 본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부디 멋진 모습으로 돌아와 자기의 이름을 두 번 불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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