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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Oct 24. 2021

<듄>

시작은 미약했으나...

영화 <듄>은 프랭크 허버트의 장편 sf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 소설인 '듄'은 1974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영화화를 시도했으나 무산되었고, 1984년에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처음 영화로 만들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듄>은 4000만 달러라는 당시 기준으로 꽤나 높은 제작비로 3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 실패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도 박했는데, 소설 원작으로 6부작에 걸친 대서사시를 2시간 남짓으로 줄이다 보니 원작에 대한 지나친 생략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훗날 제작사인 유니버설 픽쳐스의 간섭으로 러닝타임이 잘려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지고, 3시간짜리의 확장판이 나오며 재평가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후에 2000년대 들어서 이 작품의 영화화가 다시 추진되었지만, 워낙에 방대한 프로젝트이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되었다. 돌고 돌아 이 프로젝트는 드니 빌뇌브 감독 손에 쥐어졌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믿고 보는 감독 리스트에 오르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고, <컨택트>나 <블레이드 2049>를 통해 sf  장르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 그였다. 드니 빌뇌브의 <듄>은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1년여 가량 연기되었고 자연스레 2021년 개봉작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받는 작품이 되었다.

  


일단 이 영화를 제대로 관람하기 위해선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필수적일 것 같다. 원작 소설을 다 읽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원작 소설의 존재 여부와 이야기의 규모 정도는 미리 인지하고 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 결과물에 적잖이 당황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화 <듄>은 사전에 예고편이나 포스터에서 볼 수 없었던 부제가 하나 더 붙는다. 바로 영화 시작부터 나오는 'PART 1'이라는 부제다. 드니 빌뇌브의 <듄>은 이 이야기의 아주 초반만 담고 있다. 대다수의 관객은 이 사실을 알고 관람했겠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극장 방문이라는,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관람을 한 내 지인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육아 때문에 언제 다시 극장에 올지 기약할 수 없는 그에겐 영화의 결말이 찝찝함으로 남는다고 한다.


이 영화의 반응은 바로 여기서 갈릴 것 같다.



영화 <듄>은 2시간 3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동안 대서사시의 맛보기만 보여주다 끝난다. 보통의 영화라면 주인공인 폴(티모시 샬라메)의 성장과 각성 그리고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까지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로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폴이 각성을 하려는 순간 끝이 나버린다. 물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방대한 스토리를  하나의 영화로 눌러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의 마지막이 누군가에게는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의 작품성을 떠나 호불호가 갈릴만한 분명한 이유다.


이번에 개봉한 드니 빌뇌브의 <듄>은 극의 주무대가 되는 아라키스 행성과 스파이스라는 물질에  대한 소개, 이야기의 양축이 되는 하코넨 가문과 아트레이더스 가문에 대한 설명, 주인공 폴의 탄생 배경 등을 주로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2시간 30분짜리의 소개 영상 인트로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소개 영상은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친절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극적인 재미는 없다는 것이 영화의 단점이다.


반면에 이 영화의 압도적 영상미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영상'미'라는 말에 걸맞은 아름다운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가능한 크고 넓은 화면에서 봐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뛰어난 시각적 체험과 장중한 청각적 경험이 시종일관 가슴 뛰게 만든다. 반드시 아이맥스로 보라는 사람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2시간 30분 동안 별다른 클라이맥스나 긴장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 시퀀스 같은 영화적인 '재미'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 단점이다. 긴 호흡과 평면적 구성은 빼어난 비주얼로 메우기에도 다소 모자라 보인다. 눈에 띄게 대단한 그 장면들이 소설에서 표현하는걸 제대로 시각화했다고 하나, 분명 원작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드니 빌뇌브 버전의 <듄> 'PART1'은 PART 2, PART 3로 가기 위한 시작점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대서사시의 장엄한 시작을 알리는 선전포고와 같은 이 작품은 그야말로 웅장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하나의 '완성본'으로 보자면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은 영화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영화 속 챠니(젠다야)의 말처럼 그저 시작일 뿐일까. 주인공인 폴의 여정과 연출자의 드니 빌뇌브의 여정의 끝이 창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그 거창한 기백에 동의하는 사람들만큼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가 가야 할 앞으로의 방향과 별개로 하나의 영화로서 <듄>은 이러나저러나 양극단의 반응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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