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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게 없어도 쓴다.

글쓰기의 의무화

by 박상환

브런치를 시작한 지도 어언 10개월이 지났다. 처음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동기,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내 영혼을 살리고자 함이었다. 쳇바퀴 같은 생활을 계속하다가는 쳇바퀴에 깔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똥 만드는 기계'에서 '글 만드는 사람' 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이제까지 글이라고는 일절 써본 적도 없는 내가 선택한 글감은 '영화'였다. 워낙에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는 터라 리뷰 형식의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끔가다 떠오르는 마음의 이미지들을 글로서 적고는 했다. 그러나 이 글감이라는 게 화수분 같지는 않았다. 영화는 꾸준히 봤지만 모든 영화들이 다 글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뭐라고 쓸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 영화들도 있었다. (전형적인 팝콘 무비 같은) 그럴 때면 억지로 글을 늘리고 말을 붙여가며 백지를 채웠다. 글쓰기가 즐거움이 아닌 숙제가 됐고, 그렇게 쥐어짠 글들은 내가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좋아요를 눌러주는 분들이 더러 있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또한 쌓여가는 글들이 나름 나에게는 정신적 훈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고민한다. 글쓰기의 즐거움과 숙제 같은 의무감 사이에서..


이런 글을 굳이 브런치에..

브런치를 보다 보면 개인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글들이 있었다. 단순한 개인적인 일상을 적은 글들 말이다. '오늘은 어디를 갔다 왔고, 무엇을 했고, 이러저러해서 이런 것을 느꼈다..' 내가 보기엔 그냥 단순한 일기 같은 글인데 이런 글을 굳이 브런치에 왜 올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그런 글들이 메인에 오르기도 했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고 댓글을 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런 글들은 아무리 봐도 내게는 의미 없는 글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애당초 글의 무의미&유의미함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며, 나의 일상만큼이나 그들의 일상도 충분히 아름다운 의미로 가득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남기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을 어찌 내가 감히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건 정말 경솔한 생각이다. 나는 의미 없는 글로 치부했지만 내가 업신여겼던 그런 글들을 좋아해 주고 공유해주고 댓글도 달아주는 이들이 있었다. 이렇듯 글의 의미란건 결코 나의 짧은 식견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또한 이제는 굳이 그런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그 열정과 수고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보는 나는 몇 분 만에 끝나는 일이지만, 쓰는 사람은 어쨌든 시간을 투자하고 일련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행사해야만 하는 일이다. 내가 그런 글들을 비판할 자격은 없다.


이제는 나도 굳이 브런치에..

이제는 나도 굳이 브런치에 그러한 글들을 올리고 싶다. 어쨌든 매일, 매주마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라 글로써 풀어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런 것들도 꺼내어 써보려 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어보려 한다. 영화를 보고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도, 어떠한 이슈나 마음의 굵직한 글감이 없더라도 써내어 보려 한다. 글이 짧든 길든, 쓸 거리가 적든 많든 간에 쓰고 적으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애초에 글을 쓰고자 했던 그 목적에서 멀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쓸 게 없다고 계속 안 쓰다가는 펜은 무뎌지고 머리는 굳어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쳇바퀴 안에서 똥 만드는 기계로 회귀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의무감을 가지고 쓰려고 한다. 글쓰기가 즐거움보다는 숙제에 가까울지라도..


그것을 즐거운 숙제로 여기며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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