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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방울방울 영화관에..

by 박상환

<시네마 천국>의 토토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가 전부인 아이였다. 토토가 소년에서 청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영화관에서 추억을 쌓았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토토는 알프레도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에 돌아온다.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영화다. 토토는 삭제된 장면들을 편집한 영상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에 잘린 추억을 이어 붙인다. 영화와 영화관에 그것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더라.


영화를 보는 것,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많은 흔적들을 남겨 놓는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재생산되는 삶의 조각들. 습관처럼 가던 곳이라 차마 느끼지 못했는데, 요즘처럼 집에만 있는 날이 길어지다 보니 영화관을 향하던 발걸음이 꽤나 소중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다 나의 추억의 살을 찌우기 위한 일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혼자 극장에 갔던 일.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갔던 일. 만원에 세편을 보여주던 심야상영을 밤새도록 달리고 피곤에 절어 학교로 갔던 일.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설렘들. 영화와 함께 했던 모든 날들은 하나하나 다 아름답게 기록되어 있다.


이제는 사라진 이름이 돼버린 영화관들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추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성사 #개미 #1998년


지금은 귀금속 상가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는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영화관으로 한국 영화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영화관이다. 2019년엔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영화 역사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단성사가 유독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평형 배열 좌석이라는 점이다. 현재는 모든 극장이 계단식 배열로 뒷좌석일수록 높은 자리에 배치가 된다. 그리하여 뒷좌석에서도 영화 관람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를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단성사는 그렇지 않았다. 뒤로 갈수록 관람이 힘들어졌다. 가뜩이나 키가 작은 나는 뒷좌석에 앉아 영화 보는 내내 미어캣 같은 모습으로 영화를 봤었다.


나는 이때 굳이 단성사를 골라서 영화를 보러 갔었다. 이 당시에 멀티플렉스라는 신문물의 출현으로 오래된 극장들은 다 퇴출 위기에 놓여 있었다. 단성사도 예외는 아니었고 곧 철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 철거 전에 꼭 가야 된다는 사명감 내지는 호기심이 들었고 다른 데로 가자는 친구를 설득해 <개미>라는 영화를 보러 간 것이었다. 관람의 편의성을 따졌을 땐 최악의 경험이었지만 역사적인 장소에 방문했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거에 은근한 자부심이 있다.) 단성사는 결국 철거가 됐고, 2005년 멀티플렉스로 재탄생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영악화로 2008년 부도 처리되었고, 현재는 귀금속 쇼핑몰로 바뀌어버렸다.


그때 같이 갔던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세계적인 거장이 되고 싶다던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평범한 직장인도 나름 거장이라면 거장이겠지. 지금은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 소원해진 그를, 이제는 SNS를 통해서나 가끔 안부를 확인할 뿐이다.



#동아극장 #러브레터 #1999년


멀티플렉스의 발달로 동네 곳곳에 극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영화를 보려면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가야만 했다. 종로 아니면 강남.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동아극장은 강남대로 한복판에 있었다. 지금의 강남 CGV 자리다. 이 곳에서 그 유명한 '오겡끼데쓰까'를 봤다.


사실 <러브레터>는 그 이전에 이미 여러 번 본 상황이었다. 1998년 일본문화가 정식으로 수입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그 이전부터 일본문화를 많이 접하고 있었다. <러브레터>는 그러한 흐름의 대표주자였다. 영화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했고 이 영화의 비디오테이프를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화질의 화면과 조악한 번역으로 이 영화의 진가를 제대로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정식으로 일본문화가 개방된 이후 거의 선두주자 격으로 극장에서 개봉을 했다. 반응은 역시 대단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이 영화를 관람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러브레터>의 인기가 놀라운 게 아직도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이 영화에 흥행 기록을 넘어서는 일본 영화는 없다. 아마 '오겡끼데쓰까'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는 일본어일지도 모르겠다.


동아극장은 그 당시에도 나름 멀티플렉스 극장이었다. 좌석수는 적지만 3관까지의 상영관이 있었다. 2000년에 폐관 후 강남 주공공이를 거쳐 현재는 강남 CGV 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강남의 대표적인 영화관이었던 동아극장, 시티극장, 뤼미에르 극장, 브로드웨이 극장은 현재는 없어지거나 멀티플렉스로 탈바꿈해 운영 중이다.


사람들은 강남에 대한 기억이 어떤지 모르겠다. 클럽, 술집, 쇼핑, 싸이의 강남스타일... 학창 시절 나에게 강남 이란 곳은 영화관에 대한 날카로운 추억이다. 영화 보러 갔다가 휘황찬란한 불빛들에 정신을 잃었던 한 소년이 거기 있었다.



#코아아트홀 #생활의 발견 #2002년


종로 한복판. 술집과 식당들이 즐비한 한가운데 있었던 코아아트홀은 극장 이름에서 느껴지듯 주로 비주류 예술영화를 상영하던 곳이었다. 그곳에 안 가본 지 오래되어 현재는 거기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 마지막 기억은 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 다.


나는 <생활의 발견>이라는 영화를 그 당시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와 같이 보러 가게 됐다. 그때는 홍상수 감독에 대해서 잘 모를 때였다.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던 때였다. 단순히 포스터만 보고 골랐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생활의 발견> 이란 영화는 서로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 있던 남녀에겐 어울리지 않는 영화였다. 민망한 장면이 계속 나왔고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도 이름 모를 어색함이 감돌았다. 끝내 그 친구와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잠깐 우정을 나눈 사이로 마무리됐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훗날 들었던 풍문에 의하면, 그 친구는 그저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참 슬픈 전설이다. 진심이 성공하지 못한 게 <생활의 발견> 때문이었는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알았다고 한들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외에도 지금은 사라진 여러 극장들이 생각난다. 종로의 시네코아. 을지로의 명보, 스카라. 미아리의 대지극장. 우리 동네 미도파 백화점에 있던 미도파 시네마 까지. 다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의 방울들이다.




대다수의 영화관이 멀티플렉스로 바뀐 이후에도 추억들이 물론 많이 있다. 영화를 보는 것. 보러 가는 것은 언제나 소중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귀한 시간을 내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다른 세계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는 그 순간이 삶의 가장 소중한 찰나이다. 어떤 영화는 그때 내가 어디서 봤었고 누구와 봤었는지가 정확히 기억나는 영화들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또 하염없이 타임머신을 탄다. 영화는, 영화관은 정말로 나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때 그 장소는 사라졌어도 그때의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고 있다.



PS: 첨부한 사진은 그 당시에 실제로 제가 발권한 티켓입니다. 어릴 때부터 쭉 영화티켓을 모으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나이를 많이 먹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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