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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최 선생

소중한 것의 소중함

by 박상환

" 김치가 새 거네? "


김장철도 아닌데, 저녁 밥상에 갓 담근 김치가 올라왔다. 내가 일하러 나간 사이 그녀 혼자 집에서 복작대며 만들어낸 '뉴 페이스'였다. 그녀는 저녁을 먹는 내 옆에 앉아 김치에 관한 이야기 나래를 펼쳤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양념을 얼마 큼이나 넣었으며, 뜻대로 되지 않아 다시 양념을 만들기까지. 묻지도 않은 일들을 여고생 마냥 재잘거렸다. 나는 입으로는 반찬을 집어넣고, 귀로는 그녀의 이야기들을 주워 담았다.


요리는 그녀의 취미이자 특기다. 집밥. 집에서 만들어 먹는 밥과 반찬들이 그녀의 주특기다. 생선이나 고기를 매콤 또는 달달하게 조린 요리들. 제철 채소들을 손으로 쓱싹 하여 만드는 무침요리들. 그 외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맛있게 볶아내는 요리들. 적당한 간으로 식탁의 뻑뻑함을 적셔주는 찌개와 국까지. 40년 가까이 나의 피와 살을 이루고 있는 음식들이다.


놀라운 건 그녀의 레시피가 매일마다 바뀐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밑반찬들이야 몇 날 며칠을 두고 먹지만, 메인이 되는 음식은 날마다 바뀐다. 힘들지도 않을까. 귀찮지도 않을까. 하지만 요리를 하는 그녀의 얼굴엔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좁은 부엌을 바쁘게 움직이는 손과 발에는 즐거운 땀방울이 아른거린다. 요리를 하는 중간중간 나에게 간을 보게 하는 일도 빠지지 않는다. 나의 혀는 한 번도 'NO'를 말한 적이 없다. 아, 물론 어쩌다 한 번은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 적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또한 요리는 그녀의 기쁨이자 낙이다. 기쁨으로 요리하니 맛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도 즐거움으로 해내는 그녀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덕분에 나는 최고의 집밥을 매일 먹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말을 많이 했다.


"나는 음식 해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아"


그래서 그럴까. 그녀는 집으로 밥 먹으러 오겠다는 사람들을 결코 마다한 일이 없다. 친척들, 나의 친구들, 지인들. 그들의 방문을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밥그릇을 뚝딱 비우는 모습을 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고, 그들이 돌아갈 땐 남은 반찬을 직접 챙겨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우리 집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식구라고는 둘 밖에 없는 집에서, 그녀의 기쁨은 오로지 외와들인 나의 몫이었다. 어렸을 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매끼를 그녀의 레시피로 채웠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집이 아닌 밖에서 먹는 일이 많아졌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고, 이래저래 부딪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외식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밖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식탁에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냉장고엔 반찬이 마르지 않았다. 늦은 밤 집에 들어와 물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열면 항상 그 녀석들이 먼저 마중을 나왔다.




나는 최근에서야 다시 집밥 삼매경에 빠졌다.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 때문이지만, 그로 인해 소중했던 것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는 중이다. 식탁엔 다시 이야기꽃이 피었고, 부엌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엄마도 모처럼 본인의 자아를 실현 중이었다. 메뉴는 매일 바뀌었고, 실망하는 일은 없었다. 매일 저녁을 집에서 먹었지만, 절대 물리거나 질리지 않았다. 심지어 주말이면 이틀 여섯 끼를 꼬박 집밥으로 때우는데도, 한 번도 맛이 없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어도, 주름이 좀 늘어났어도, 최 선생님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코로나라는 천재지변에 엄마도 처음에는 매우 낙담했다. 일이 줄고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당장의 생계가 무섭게 다가왔다. 그러나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는 남는 시간을 통해 본인의 취미생활을 적극적으로 하고자 했다. 취미생활의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요리의 맛은 물론이거니와 요리를 통해 식구가 모이게 되고, 모인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오늘의 일상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속 깊은 대화들도 이루어졌다.


그런데 속에 담아놨던 얘기들을 꺼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게 되는 일도 있다. 그럴 때면 집안의 공기가 차가워지기도 한다. 이때도 분위기를 바꿔주는 것은 역시 집밥이었다.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도 엄마는 제시간에 맞춰 밥과 반찬들을 정성껏 차렸다. 그때는 옆에 앉아서 재잘대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멀리서 내가 맛있게 먹나 안 먹나 살피는 눈길이 등 뒤로 느껴졌다.


맛있었다. 엄마의 그 밥이 날 선 감정들을 무장해제시켰다. 밥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당장 집을 나가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었다. 그러나 밥을 먹는 순간 이 공간과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집이란, 밥이란, 참으로 그러한 존재인가 보다. 모든 허물과 틈을 메우고도 남는 위대하고도 신비한 존재. 그리고 그 모든 걸 가능케 하는 집밥의 창조자 최 선생님. 나의 엄마.



엄마가 자주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나중에 결혼해도 반찬 걱정은 하지 말라고, 음식 못하는 며느리라도 엄마가 전문 가니까 상관없다고". 내가 2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다. 아직 엄마에게 며느리는 없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저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도 요새는 부쩍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의 엄마는 시간을 투자해 요리를 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그 배에 달하는 시간을 누워서 쉬게 된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라도 하면, 몇 날 며칠을 고생한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항상 얘기한다. 대충 먹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이왕 먹는 거 제대로 해서 먹어야지, 대충 먹긴 왜 대충 먹어"


단 한마디의 말로 나의 만류를 만류한다. 내가 옆에서 도와줄까도 해봤지만, 방해된다고 들어가 있으라 한다. 그렇지, 요리는 엄마의 가장 큰 기쁨이자 낙이었지. 나는 열심히 기미상궁 역할을 하며, 맛있게 음미함으로 엄마의 기쁨에 양념을 넣어야겠다.



"김치가 새 거네?"


나의 이 짧은 한마디에 엄마는 이 새로운 김치의 탄생과정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제는 엄마의 이야기에 귀만 열어놓지 않는다. 나도 나름대로 엄마의 장단에 맞춰주고 있다. 밥을 먹는 입으로 연신 리액션을 해댄다. 엄마의 기쁨에 동조하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미워서다. 늦은 밤 나를 마중하던 냉장고의 반찬들이 생각 나서다.


언젠가 최 선생님의 기력이 쇠하게 되면, 요리가 기쁨이 아닌 노동이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나는 최 선생님의 집밥을 오랫동안 계속 먹고 싶다. 엄마를 고생시키는 불효자식이라 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껏 하지 못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집밥의 기쁨. 맛있는 요리로 대접하고 나누는 기쁨. 이 기쁨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최 선생님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불효일까 효도일까. 잠시 생각하는 사이 부엌에서 또다시 칼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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