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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pr 16. 2020

<헌터 킬러>

집중을 안 해도 집중이 되는

때로는 그런 영화도 필요하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봐도 되는 영화.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보는 영화가 아니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넋 놓고 보기만 해도 감상에 전혀 무리가 없는 영화. 애써 집중하지 않고, 화면에 눈만 갖다 놔도 쑥쑥 들어오는 영화.


복잡한 플롯, 극적 반전, 섬세한 감정표현. 이런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피곤한 일이 되기도 한다. 또한 집중한만큼 기대치가 충족되지 못한다면 그 영화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에너지 소비 없이 보는 영화도 필요하다. <헌터 킬러>는 이러한 조건에 잘 부합하는 영화다.


그런데,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고자 선택했던 영화들이 수준 이하의 완성도로 다 보고 난 후에 오히려 무거운 마음이 되는 경우도 많다. <헌터 킬러>의 완성도는 절묘하게 마지노선을 넘지 않는다. 끼니나 때우려 들어갔던 집 앞 허름한 식당에서 의외의 맛을 발견한 느낌이다. 뭐 대단히 맛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아'라는 이름의 경계선에 서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헌터 킬러>는 잠수함을 소재로 한 영화다. 러시아 인근 바다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잠수함이 충돌한다. 미국은 진상 조사와 사고의 수습을 위해 또 하나의 잠수함을 투입한다. 이 시각 러시아는 내란의 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영화의 많은 분량은 잠수함 내부와 잠수함끼리의 교전이 주를 이루고 있다. 더불어 육지에서 벌어지는 전투도 양념처럼 첨가되었다.


별 볼 일 없는 스토리를 꾸미는 것은 잠수함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긴장감 유발이다. 어뢰를 피하고 바닷속에 지뢰를 비껴가는 잠수함의 움직임은 느릿느릿하여도 굉장히 스펙터클 하다. 또한 그 어떤 잡수함 영화보다도 전문적인 단어들이 많이 나오며, 실제 잠수함 내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세팅으로 사실감 넘치는 묘사에 힘을 더하고 있다.


예산의 문제였을까. 이 영화는 액션 영화라고 하기엔 굉장히 귀여운 스케일을 보여준다. 그래도 이 영화의 액션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바닷속과 육지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양분하여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당량의 액션을 보여준다. 액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다.


<헌터 킬러>는 딱 필요한 만큼의 내용과 정보만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것만 알아도 재밌게 볼 수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이 영화는 굉장히 유치한 영화인데, 신기하게도 깊이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정말 때로는 이런 영화가 절실히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쉽고 가볍게 보는 영화라도 그 안에 드라마는 한 두 개씩 꼭 끼워 파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헌터 킬러>는 그마저도 없다. 전쟁이나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보는 가족, 연인, 이별 같은 클리셰가 없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의 오랜 떡밥인 팍스 아메리카나 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상당히 담백한 느낌이다. 얼핏 보면 굉장히 빈약한 서사이기는 하나, 쓸데없는 가지를 과감히 잘라낸 것이 차라리 더 도움이 되었다.




나는 웬만하면 영화 볼 때 핸드폰은 꺼놓는 편이다. 극장에서 보든 집에서 보든.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게임을 하면서 봤다. 카톡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핸드폰에 각종 알림이 뜰 때마다 일일이 들어가서 확인도 했다. 한마디로 영화를 보면서 딴짓을 많이 했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잠깐 한눈을 팔아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고 충분히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집중을 안 해도 집중을 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나는 여태껏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집중'을 목숨같이 생각했었다. 누가 방해라도 한다면 속으로 굉장히 화가 났었다. <헌터 킬러>는 영화의 완성도는 둘째 치더라도 내게 영화감상에 새로운 대안 같은 영화가 되었다. '아 이런 영화도 있구나' '이렇게 봐도 재밌게 볼 수 있구나'


그래, 사람이 어떻게 매사에 집중할 수 있겠어.



ps: 실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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