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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pr 25. 2020

<사냥의 시간>

총놀이는 함부로 하지 말자

영화 <사냥의 시간> 은 단연 올 상반기 한국 영화계의 가장 큰 기대작이었다. 9년 전 <파수꾼>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윤성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며, 전도유망한 젊은 남자 배우들의 협연만으로도 영화팬들의 관심은 상당했다. 게다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까지 되면서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이 영화는 당초 2월 26일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하여 개봉이 연기되더니, 결국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을 했다. 배급 문제로 인한 잡음도 있었고, 여러모로 순탄하지 않은 과정 속에 4월 23일 드디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기대치를 한참이나 밑돈다. 영화의 제목인 <사냥의 시간>에서나, 공개된 트레일러를 통해서나,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총격전'과 '추격전' 이 될 것처럼 보였다. 맞다. 이 영화의 핵심은 총과 추격이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의 긴장감이나 역동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의 목적은 누가 봐도 명확한데 그 목적을 하나도 달성하지 못한다. 쉽게 말해 <사냥의 시간> 은 매우 지루하며 재미가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허술한 내러티브와 널뛰는 편집이 문제다.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 완전 엉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네 명의 친구들이 한탕을 꿈꾸며 강도짓을 하고, 누군가에게 계속 쫓기며 필사의 추격전을 벌인다는 영화의 큰 줄기는 문제 될게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그러한 스토리를 충분히 설명할만한 내러티브가 너무 부족하다. 인과관계나 개연성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시나리오는 프로의 수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액션 영화의 특성상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개연성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장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마지노선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개의 액션 영화들의 경우 개연성을 포기하는 대신 눈요깃거리를 시종일관 배치해 차마 개연성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게 만든다. <사냥의 시간> 은 그렇지가 않다. 이 영화에서 눈을 잡아끄는 화끈한 볼거리는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폭죽 같은 액션에 중점을 두고 있진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사냥의 시간> 은 쫓고 쫓기는 추격을 통한 긴장감과 서스펜스에 목적을 두고 있음이 분명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쫓는 자'의 역할일 것이다. 쫓는 자 역할로 인생 연기를 펼친 굵직굵직한 악역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결국 <사냥의 시간>의 패착도 여기에 있다. 이 영화의 쫓는 자 '한'이라는 캐릭터는 캐릭터가 응당 보여줘야 할 공포, 긴장, 카리스마 그 무엇 하나 보여주지를 못한다. 총은 잘 쏜다. 사격대회에서 1등 먹고 포상휴가 나온 군인의 느낌이다. 그만큼 캐릭터의 매력이 떨어진다. 이건 두 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첫째는 미안한 얘기지만 배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이 부족한 탓이고, 두 번째 이유는 연출자가 캐릭터 묘사에 완벽히 실패한 탓이다. 코트를 휘날리며 목소리 깐다고 다가 아닌데 어째 이 영화의 악역은 본인의 멋에만 너무 심취한 듯하다. '한'이라는 캐릭터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안톤 쉬거' 정도만 됐어도 이 영화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훌륭한 장르 영화엔 반드시 훌륭한 악역이 존재한다.


쫓기는 자들인 네 명의 친구들에 대해선 딱히 할 얘기가 없다. 분명히 주인공인데 무엇 하나 인상적인 부분이 없다. 그냥 열심히 달릴 뿐이다. 이들의 대사와 행동들은 캐릭터에 딱 달라붙지를 못한다. 그러다 보니 보는 내내 캐릭터에 몰입이 안되고, 영화에 집중이 안된다. 이 또한 역시 캐릭터 묘사에 완벽히 실패한 부분이다. 뜬금없는 우정 표현으로 캐릭터에 힘을 준다고 한들 실소만 나올 뿐이다. 이 영화에 브로맨스는 차라리 사족에 더 가깝다. 문신과 염색에 공을 들일 시간에 캐릭터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는 노력을 더 했어야 했다. 연기력과 흥행력이 어느 정도 검증된 젊은 배우들을 가지고 뽑아낸 결과물이 겨우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사냥의 시간> 은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 묘사, 사건의 인과관계를 지나칠 정도로 과감히 생략하고 있다. 이는 필시 총격과 추격에 힘을 더하기 위함일 텐데, 안타깝게도 <사냥의 시간>은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한다. 필요 이상으로 절단된 각본과 편집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최악이 아닌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미장센이다.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사냥의 시간> 은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스타일이다. 조명, 미술, 음악 등 미래 대한민국의 암울함을 표현하기 위해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여러 실망스러움 속에서도 이 영화의 매력적인 '톤'은 또렷이 남는다. 지루한 추격전 속에서 폐건물이나 공장단지 같은 공간감이 그나마 긴장감을 조금은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스타일리시함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 배경은 멋지게 그려놓고 한껏 폼을 잡았지만 결국 의미 없는 병풍이 되고 만다. 사실 이 영화는 굳이 배경을 미래의 디스토피아로 설정할 필요가 없는 영화다. 애써 디스토피아적인 밑바탕을 그렸지만 영화는 전혀 그런 세계관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 초반부에 친구들이 나누는 환율에 대한 대화에서 그나마 조금 우울한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이 있다면, 이 영화의 새로운 시도에 있다. 한국은 총기 소유가 금지되어 있는 나라다. 한국영화에서도 전쟁영화를 제외하고는 총기가 전면적으로 나오는 영화는 극히 드물다. <사냥의 시간> 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총기를 소재로 한 액션을 대놓고 표방하는 영화다. (메인 빌런도 특등사수다.) 권총뿐만 아닌 다양한 총기가 등장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한 총격전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액션은 100% 총으로만 이루어졌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흔히 보던 맨몸액션은 이 영화에 없다. 이러한 도전과 시도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러나 총이란 아직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재인 듯하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아직은 이 매력적인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영화 <사냥의 시간> 은 야심 차게 장전하여 힘껏 발사했지만 아무런 타깃도 명중시키지 못한다. 아까운 총알만 낭비했고, 몇 주간 이어진 법정공방에 상처만 입었다. 4월 23일 공개된 후 영화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사냥의 시간> 은 총부리를 제대로 겨누지도 않은 채 이도 저도 아닌 데에 발사만 했다. 결국 아무것도 사냥하지 못했고, 피와 같은 시뻘건 색깔만 머릿속에 남았다. 역시, 총놀이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었다.




PS: 기대를 내려놓으면 의외로 재밌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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