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펑크는 1960년대 초에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활동을 시작한
시각예술가들에게 붙여진 명칭이다.
버클리 대학 미술관 관장인 피터젤츠가 1967년에 열린 전시회 제목을 punk로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2
punk의 어원은 펑키(funky)에서 시작되었는데 펑키는 음악용어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도 음악으로 이해하고 있다.
#3
펑크의 의미는
한국에서는 일정이 펑크났다.
타이어가 펑크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의미들을
나열하면
보잘것 없고 가치 없는 사람, 폐물
보통현실과는 다른
젋은 불량배
애송이
동성연애자
농담
허튼소리
버틀리고 우울한 분위기 등의
의미를 지닌 속어다.
한때
불한당, 양아치라는
의미의 욕으로도 사용되었다.
#4
지금시대야 다양성의 시대라
앞서 나열한 저 의미들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이었던 것 같다.
#5
현재 정의하고 있는 펑크는
관습에 억매이지 않으며
감각적이고 또 직접적이다.
현 시점의 크리에티브 아트 자체가
펑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말해도 될만큼 펑크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며
여전히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6
틀에 박히지 않는 자유
요즘 가장 많이 부각되는
어구다.
펑크는 펑크록
펑크 문화
그리고 SF등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미국흑인음악의 한장르
FUNK와는 완전 개념이다.
P와 F를 구분해야 한다.
#7
punk의 대표적인 문화인
펑크록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Do it your self라는
평등적인 에토스를 내세우며
펑크 문화운동으로 발전됐다.
섹스피스톨즈의 보컬 존라이든은
사령타령이나 하는 그런 노래에
대항해 저항할 것이라는 기조를 바탕으로
펑크록의 아이콘이 된다.
#8
펑크록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음악장르라기 보다
정신적인 측면이 더 크다.
즉 하나의 문화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이 문화는
다양한 문화들과 결합되어
여러가지 물리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나 영국펑크의 부흥은
정말 많은 후대들에게 영향을 준다.
섹스피스톨즈, 버즈콕스, 수지 앤 더 밴시스
즉 모두가 펑크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졌다.
#9
1977년을 특히 런던펑크라고 불리우는
최대의 부흥기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 때 당시 영국의 분위기는 그야 말로 망조였다.
공공기관은 기능은 미비했고 실업자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많은 젊은이들이 실업수당에 의지하며 살아간 그야말로 최악의 시대였다.
특히나 자메이카등에서 넘어온 흑인, 파키스탄인 등등 다양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1950~60년대에 영국으로 넘어오면서 인종 갈등 역시 극단적 상태가 되었다.
사상적으로도 극단주의가 횡행하게 되며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에서 펑크록은 디스토피아를 그려내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고 이때의 밴드들은 점점 과격해지게 된다.
다만 서브컬쳐였던 펑크록이
주류미디어의 간택을 받게 되면서
기존의 정체성 자체가 분열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하위 장르로 분화되며
펑크 그대로의 문화는 사라진다.
#10
펑크록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인디로 불리우는 대안적 음악활동의 시작이다.
잘가는 밴드 스타디움
그 아래는 TV
그 아래는 메이저급 클럽
더 아래는 마이너급 클럽
그러나 DIY의 확산으로 인해
이 도식은 사라지고 기획사 없이
1인 기획사를 설립하여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1
펑크는 결국 하나의 태도에 대한 문화가 되었다. 그렌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의 표현을 가지고 오면 내가 쓰레기통을 차면 펑크지만 네가 쓰레기통을 차면 그건 따라하는 거다.
펑크의 가장 큰 유산은
Do it yourself와 더불어
Anyone can do it이라는 슬로건이다.
본연의 가치에 충실한 정수를 추구하는 것
그것은 결국 자기다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