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비움에서 부터
#1
요즘도 공부를 하면서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디자인을
사고하는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2
한국적인 디자인 사고는
단절되고 삭제된 듯하다.
해방 후 근대화 과정에서
디자인은 독재권력의 수단이거나
개발의 도구로 전락했다.
있는 것을 지키고 보존하기보다,
‘촌스러운 것'이라며 깡그리 지워버리고
그저 콘크리트로 모든 것을 채웠다.
맥락(Context)이
잘려 나간 자리에
고유한 방법론이
뿌리내릴 리 없었을 것이다.
#3
결국 우리는
‘기술적 진보'는 이뤘지만
‘문화적 진보'는 놓쳤다.
18세기 영남지도를 보면
산, 길, 강만 보인다.
내추럴함 그 자체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정복하지 않고
‘공존'하려 했다
서원의 배치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탁월한
기획자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자연스러운 비움 대신,
빽빽한 채움과 직선만 남겼다.
#4
나는 한국적
디자인 방법론의
핵심 키워드를
‘비움(Emptiness)'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모더니즘이
‘채움의 합리성'이라면,
한국의 미학은
‘비움의 가능성'이다.
디자인의 본질이
문제 해결이라면,
때로는 무언가를 더 채워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비워내서
해답을 찾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5
우리도 우리만의
한국적 디자인의 보편성을
확립해야 한다.
단순히 전통 문양을
기계적으로 입히는 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문제를 대했던 태도,
자연과 사람을 잇는 그 '정신'을
현대적 비즈니스
설계에 녹여야 한다.
#6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역설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기준을 획득해야 한다.
모든 보편성의 기준은
화려한 비주얼이 아니라
정신과 태도에서 나온다.
언어적 정의가 없이
시각적인 것이 나올 수 없다.
#7
현재까지 내가 내린 기준은
비움이다. 비움은 ‘허’다
서양에서의 비움은 결핍이나
동양의 비움은 채우기 위한 상태다.
2026년에는 그 세계로
좀 더 가까이 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