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 재수 열풍
쇼미더머니 시즌이 돌아오고 있다. 타이거 JK. 다이나믹 듀오 같은 거물들이 마침내 프로듀서로 참여한다는 뉴스가 도착했고, 얼마 전엔 출연자가 확정됐다는 소식이 퍼졌다. 면도, 자메즈, 진돗개, 한해 같은 '재수생'이 줄지었고, 이그니토, JJK, 피타입, 키비 본킴 같은 데뷔 십년이 넘은 ‘올드 래퍼’가 허다하다. 쇼미더머니6는 역대 가장 화려한 시즌으로 예고된 한편, 가장 많은 기성 래퍼가 참가하는 시즌으로 확정됐다. 아마도 지난 시즌 우승자 비와이가 일약 슈퍼스타로 등극한 것이 래퍼들을 자극하고 고무시킨 것 같다.
이 소식들이 알려주는 사실은 한국 힙합에서 쇼미더머니의 바깥 지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이름이 알려진 래퍼 중 쇼미더머니에 출연하지 않은 래퍼는 별로 없다. 타이거 JK처럼 그 이름이 곧 한국 힙합을 상징하는MC도 섭외했고, 쇼미더머니를 비판하며 거리를 두던 래퍼들도 신청서를 작성한다. 지금 쇼미더머니는 유명세의 보증인이 됐고, 상업 신으로 향하는 유일한 등용문이다. 일개 방송 프로그램이 한 장르 음악에 이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내가 알기론 어디에도 전례가 없다.
여기서 Mnet 뒤에 독점 문화자본 CJ e&m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수직 계열화라는 용어가 있다. 주로 영화산업에서 CJ와 롯데 시네마 같은 대기업이 제작-배급-상영을 함께 경영하는 독과점 현상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힙합이란 장르 음악도 사실상 수직 계열화된 상태다. CJ는 하이라이트와 AOMG라는 힙합 레이블을 두 개나 인수하며 '제작' 부문을 소유했다. 래퍼들 인지도와 행사 섭외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회사 Mnet의 쇼미더머니로 힙합의 '플랫폼'까지 주무르고 있다. 개별 장르 음악에 하나의 자본이 미치는 영향력이 이만큼 거대하단 사실은 어떻게 봐도 정상이 아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나는 쇼미더머니가 시작할 때부터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옳고 그름을 떠나 이 프로그램이 '싫다'. 힙합은 지극히 경쟁적인 장르이며,래퍼가 직접 가사를 쓰는 장르다. 이 말은 MC 한 명 한 명이 음악의 주체로서 자부심과 아이덴티티를 걸고 활동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이름이 없고 배경이 없어도, "내가 최고"라고 말하며 플레이어들을 향해 도전장을 낼 수 있는 음악이 힙합이다. "넌 가짜 난 리얼"이라는 특유의 과시적 문법의 배경에도, 각각의 독립된 자의식이 경합을 벌이는 수평적 생태계가 있다. MC가 다른 MC에게 심사를 받으며 합격 여부에 가슴 졸이는 건 힙합의 존재 방식을 가장 깊은 곳까지 부정하는 촌극이다. 쇼미더머니 시즌1이 시작할 때부터 회오리친 모든 논란은 MC들을 쇼프로 동물원에 집어넣고 주체성을 중성화 수술하며 벌어진 부작용에 다름 아니다. 언더 MC들의 보이콧 선언에 직면한 시즌1은 물론, '본토 힙합' 큰 형님 스눕독 앞에서 참가자들이 마이크 뺏기 아귀 싸움을 벌인 저 악명 높은 장면이 정확히 그렇다. 이런 참극이 벌어진 건 혹은 이런 참극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저항도 없었던 건, 명백히 CJ가 한국 힙합 보다 위에 있다는 증거다.
심사란 포맷이 그나마 정당화되려면 기성 MC들이 아니라 아마추어들을 모집해야 한다. 쇼미더머니는 싱글에 앨범까지 몇 장 씩 낸 래퍼들을 아마추어들과 함께 모집한다. 예선을 통과하는 숫자는 전자가 압도적이고, 스테이지가 거듭되며 어느 순간 아마추어는 멸종된다. 두 부류는 실력은 물론,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맥과 이름값, 화제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슈스케, 케이팝 스타 등등 많은 오디션 프로에서도 이렇게 불공정한 방식으로 문호를 연 적은 없었다. 차라리 나는 가수다와 복면가왕 같은 서바이벌 배틀 프로라면 기성 래퍼들의 출전에 흥분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엄연히 오디션 포맷의 프로그램 아닌가. 아무리 힙합 ‘예능’이라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기다. 아마추어들한테 참가 신청서는 왜 받는가? ‘지나가는 참가자 1’로 엑스트라 알바나 뛰라는 건가? 아니면 “7839233명 참가자 접수!”처럼 분위기를 띄우는‘숫자’로 동원하는 건가? 단정하는데, 쇼미더머니엔 신인을 발굴하는 기능이 없다.
씨잼처럼 준결승까지 올라간 래퍼가 재차 참가해 “돈을 더 땡기고 싶어 나왔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나는 한 번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잘 풀리고 있으니 새 얼굴들이 기회를 얻도록 자리를 비켜 주자는 개념만 있어도 이런 행동들은 안 한다. 기성 래퍼들이 데뷔해서 활동하고 있는 건 순전한 제 힘이 아니다.먼저 활동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바닥이 있고, 트랙에 피쳐링 해주고 크루에 초대하며 상생하려는 동료들이 있으니 가능한 거다. 힙합 만큼 플레이어들의 유대감이 끈끈한 장르가 없는데, 쇼미더머니라는 거대한 ATM 기기 앞에선, 이 장르에 열정을 품은 누군가에 대한 작은 배려심도 쓸모 없는 걸까?
이런 낯 뜨거운 행태를 정당화하는 건 오직 돈이다. 힙합은 돈 자랑이니까, ‘허슬’해서 쟁취하는 건 멋있으니까,외제차를 몰고 금시계를 차는 게 레퍼의 삶이니까, 과정이야 어찌됐건 돈을 번다는 사실 하나로 모든 긍지를 갈음하는 것이다. 쇼미더머니는 ‘스웨거’라는 자기 과시의 향연으로 힙합을 소개하며 흥행 포인트를 특화한 무대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뽐내봐도, 말했듯이 정작 그 무대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MC란 이름이 지니는 프라이드를 반납해야 한다. 이건 래퍼들이 예능에 나가 망가지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고, 바로 이 점이 쇼미더머니란 프로그램이 품은 해소될 수 없는 딜레마다.
어제는 또 하나의 참가 소식이 도착했다. 시즌1에서 프로듀서를 맡은 더블케이가 참가자로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올드 래퍼들과 재수생들의 홍수 속에서도 이색적인 뉴스다. 더블케이는 2004년에 데뷔해 몇 장의 정규앨범과 수많은 피쳐링으로 커리어를 쌓았고, 특출한 랩 스킬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 이런 래퍼들이 래퍼가 아니라 싱어인 딘, MC로서 정체성이 불분명한 박재범에게 심사를 받아도 괜찮은 걸까? 이런 방식의 심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건 더블케이 개인의 자존심 문제를 넘어, 힙합이란 게임의 규칙을 오작동 시키는 일이다. 더블케이 정도면 음악을 할 만큼 했고, 돈과 인기도 누려봤고, 평판도 얻을 만큼 얻었다. 그가 발표한 앨범이 많지는 않지만, 그 정도 커리어를 쌓은 MC도 많지 않다. 이런 베테랑 래퍼가 이미 프로듀서로 참가한 자리에 오디션을 받으러 나가는 것. 이건 전 세계 힙합 신에서 오직 쇼미더머니 만이 연출할 수 있는 기이한 광경 아닐까?
피타입과 키비, 더블케이 같은 이들은 한국 힙합의 역사를 이루는 스틸 컷에 포함된 래퍼들이고, 저마다 힙합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거나 얻었다. 그들이 이 신에 기여한 것이 있다면 존중해 마땅하며, 나는 이 지면에 ‘Respect'에 관한 글을 한 차례 썼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기도 하다. 그들의 이름은 한국 힙합에 대한 많은 사람의 추억, 그리고 긍지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