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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y 24. 2017

지워진 노란색

<쇼미더머니6> 프로듀서 싸이퍼 묵음 처리

https://www.youtube.com/watch?v=lEqjUJuG96o


https://www.youtube.com/watch?v=aPtZlGAKpvU


쇼미더머니 시즌입니다. 힙합 커뮤니티 여론은 이미 쇼미더머니 모드로 셋팅된 것 같고요. 거듭되는 홍보를 통해 대중적 관심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일이죠? 쇼미더머니 제작진은 새 시즌을 앞두고 프로듀서로 섭외한 래퍼들의 싸이퍼 영상을 발표했습니다. 지코와 딘, 최자와 개코, 박재범과 도끼, 비지와 타이거 JK가 한 자리에 모여 차례로 랩을 뱉었죠. 참여자들의 퍼포먼스는 대체로 좋았고 괜찮은 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더군요. JK의 벌스에 어색한 공백이 있고 가사도 이해가 갈 듯 말 듯 뜬구름 같았어요. 왜 저럴까 싶었습니다. JK가 비지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한 벌스 원본을 들어보니 진상을 알겠더군요. 제작진이 특정 단어를 묵음 처리해버린 겁니다. "파란색 기와"와 "노란색 리본"이라는 표현이죠.


저런 편집에 JK가 동의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제작진이 주도적으로 결정한 일이겠죠. 일종의 자체 검열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요.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비속어나 19금 표현이라면 납득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 단어들 어디에 그런 문제가 있습니까. 파란색 기와는 청와대, 노란색 리본은 세월호를 뜻하는데요. 저 단어들과 함께 해석하면 JK의 가사는 박근혜 탄핵과 국민주권 회복을 기리며, 세월호의 사회적 의의를 곱씹는 내용입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이라, 제작진이 프로그램에 무겁고 예민한 색채가 물드는 걸 우려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 외엔 다른 이유를 찾기도 힘들고요. 이런 처사는 아티스트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무지하고 편협하고 경직되고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JK는 엠넷이 마련한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이고, 자신의 말과 철학을 표현하는 예술가요 MC입니다. 불가피하고 합당한 사유가 없다면 그가 고안한 표현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겠죠. 뿐만 아닙니다. 세월호와 박근혜 탄핵은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에 관한 당파적 사안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민주주의 사회의 원칙에 관한 보편적 사건이죠. 유튜브를 둘러보니 이런 댓글도 보이더군요. “세월호는 당파적 사건이 아니지만 특정 정치세력이 감성팔이하며 여론을 선동했으니 엠넷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거다.” 이건 사안을 완전히 반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박근혜 게이트 이후 청문회 등을 거쳐 밝혀진 사실만 봐도, 지난 정부가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를 아집과 이해관계로 억누르고 외면했기에 세월호가 당파적 의제처럼 취급당했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설령 누군가가 ‘노란색 리본’ 같은 표현을 불편해한다고 해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사회에 관한 문제를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힙합은 MC가 직접 가사를 쓰는 장르이고, 때문에 그가 처한 현실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힙합의‘저항정신’이라는 코드 역시, 인종차별에 직면한 미국 흑인들의 사회, 게토에 관해 말하며 자연스럽게 태어난 것이고요. 한국에는 게토 같은 빈민가가 없기 때문에 ‘저항정신’이란 코드가 때론 억지스럽게 연출되고 때론 “힙합이라면 사회비판을 해라”처럼 당위적으로 강요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을 가르는 이분법과 결벽증입니다. 정치는 사회 구성원의 삶을 떠받치는 구조물이며, 사람들의 일상을 알게 모르게 규율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노란색 리본’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느껴 걸러내는 것 역시 정치적 판단입니다). 당신이 학교에서 치르는 입시 시험도, 당신이 먹고사는 문제도, 당신의 목숨과 안전을 이어가는 문제도 국가의 관할이며 정치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죠. MC들이 돈과 사랑에 관해 말하는 것만큼이나 사회에 관해 말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고 타당한 일입니다.


지금껏 쇼미더머니 제작진이 JK의 벌스를 묵음 처리한 사실에 불만을 토했습니다만, 이 프로그램의 진짜 문제는 어떤 표현을 걸러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 말고 다른 표현은 걸러내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간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는 ‘악마의 연출’로 대변되는 선정성으로 미친듯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블랙넛은 관심을 끌고 싶어 바지를 깠고, 송민호는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가사를 뱉었고, 디스 배틀 스테이지에 래퍼들을 풀어놓고 싸움을 붙였습니다. "힙합은 디스의 문화"란 미명으로 온갖 독한 막말을 연출해 팔아먹으면서 JK의 가사는 용인하지 않았단 거지요. 방송 편집이라는 건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을 저촉하지 않기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MINO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는 살아남고 "노란색 리본"은 커트당하는 편집은 대체 뭘까요? 이 프로그램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갈수록 해괴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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